소년소녀 가장세대를 찾아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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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가장세대를 찾아서(3)
  • 보은신문
  • 승인 199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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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요", 살림에 이력이 난 11세 어린소녀 박미정양
오후 5시 학교공부를 마친 미정이는 빨강색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버지 저녁밥을 짓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늘 오가는 길이지만 비가 온 뒤 활짝 핀 상큼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싱그럽고 초록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나무가 점점 진하게 빛을 발하며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멱을 감고싶을 정도로 맑다. 그런 풍경만큼이나 근심걱정 하나없는 밝은 표정으로 미정이는 이같은 5월의 풍경을 원고지에 옮겨보고 싶어진다.

수정초등학교 법주분교 4학년인 박미정양은 아버지 박봉옥씨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 동그랗게 큰 눈, 명랑한 웃음, 개구쟁이 같은 행동, 때가 묻고 조금 허름하다 싶은 옷만 아니면 이 아이가 정말 엄마 몫을 해내고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집에 가면 할 일이 많아요.

아버지 저녁밥도 지어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하루종일 혼자 집에만 계신 아버지께 말동무도 되어 드려야 해요" 이렇게 말문을 연11살 자그마한 체구의 미정이는 좀더 빨리가기 위해 아스팔트 차 길을 뒤로하고 농로로 질러걷기 시작한다. 내속리면 중판리 안터말의 집까지는 조금 멀다싶지만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는 사람이 책가방 들어주기 등 장난을 치며 걷다보면 집까지도 금방이고, 보고싶은 엄마생각도 잠깐 잊을 수 있다. 돌멩이가 울퉁불퉁 솟아있는 길을 단숨에 뛰어올라 언덕위의 외딴 집에 들어서며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방문을 활짝 연 미정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는다.

금방이라도 어머지가 '미정이 이제 오니'하며 나올 것 같아 어머니없는 설움이 더 북받친다. 방 1칸 부엌 1칸 폐허인 듯 싶은 집에서 땅한평 없이 정부구호양곡으로 끼니를 잇는데, 가끔 날품을 팔아 생활비를 보태는 아버지는 며칠동안 술만 마셨는지 오늘도 기운을 못차린다. 미정이는 엄마얼굴을 모른다. 예쁜 여동생이 한 명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본 적이 업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부터 아버지와 단둘이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단지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 6년 여전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이웃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그런가보다 생각할 뿐이다.

여느 아이들은 아직도 꿈나라를 헤맬 새벽 5시30분, 집안 일을 자신이 해야하기 때문에 미정이는 게으름을 피울 사이도 없다. 생활능력이 부족한 아버지 때문에, 혼자 살림에 이력이 난 미정이지만 아직까지 반찬을 만들 줄 몰라, 가끔씩 와서 빨래며 밑반찬이며 김장김치도 만들어주는 고모와 숙모 덕택에 그런 대로 지낼 만 하고,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어머니, 아버지와 다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고, 부모님이 사주셨다는 선물을 학교에 가져와 자랑할 때 제일 서럽다"는 미정이는 생일때마다 아버지가 용돈도 주고 과자도 사주지만 돈이나 선물보다는 술을 안드시고 건강해져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며, 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 먹고 어머니가 깨끗하게 빨아준 옷을 입고 싶다고.

이 다음에 커서 불쌍할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미정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도 치고 남학생들과 축구도 하며, 숙제와 공부에 매달리는 평범한 어린이로서 5월의 신록만큼이나 푸르고 맑은 마음으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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