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 성족리…동학 농민군 집단매장지 발견
보은읍 성족리 앞산계곡이 1894년 보은전투 당시 희생된 약2천6백여명의 동학농민군 집단매장지임이 밝혀져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군이 지난 7월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소장 자용걸)에 '외속리면 서원리 서원계곡 문화유적지표'조사에 대한 용역의뢰 결과 나타났는데, 이에 따라 군은 학술토론회 등에 발표된 조사내용을 통해 성역화 시키거나 위령탑을 세우는 등 추후 계획을 세워나가기로 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동학농민군 집단매장지로 밝혀진 성족리는 1894년 12월17일 일본군과 관군과의 싸움에서 패배, 퇴각하였던 최시형, 손병희의 북접 농민군이 무주를 거쳐 상주로 향했다가 영동에서 패하고 충주로 퇴각한 뒤 잔여부대가 성족리에 모여 최후항전을 모색했던 곳으로, 이날밤 일본군과 관군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동학농민군 2천6백여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충북대 신영우 교수에 따르면 "당시 동학군은 종곡리(북실)와 성족리의 벌판과 구릉에 있었는데, 한복으로 변장한 토벌군이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포위당한 가운데 종곡리 달안이 (月內) 마을 앞산 골짜기에서 무참히 살해당하거나 산 채로 구렁에 묻힌 슬픔어린 땅"이라고. 성족리와 인접한 종곡리 달안이 마을 앞산 골짜기는 그동안 사실확인이 안된채, 마을노인들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곳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이번 조사를 통해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조사단은 또한 당시 집결지인 외속리면 장내리에 축조했던 성터, 성축터 일부와 당시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 조각 다수를 수습하기도 했다.
논·밭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 어려운 성족리 동학농민군 집단 매장지는 사실적 규명 등 학계의 보다 종합적인 검증작업이 이뤄져 한국근대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서, 내정개혁과 외세배격을 주창한 동학혁명의 최대격전지인 역사의 현장으로 정비·복원되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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