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씨(회북 애곡)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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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씨(회북 애곡)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 송진선
  • 승인 2003.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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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인수위에서 활약한 보은출신 중 최고 고위직 공무원
장관, 차관 차관보 다음. 서열상 4순위. 산업자원부의 핵심 보직인 기획관리실의 이현재 실장. 보은출신 공무원 중 최고 고위직인 그는 민주당 인수위 팀에 들어가 산업자원부 분야에서 업무 인수뿐만 아니라 정책 개발 등에서 두각을 보인 인물이다.

누가 그런 그를 첩첩산중의 하늘만 뚫려있는 산골에서 태어났으리라고 생각할까. 가난한 집안의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대학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지만 생활비 때문에 내내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아르바이트를 했으리라고 생각할까.

회북면 애곡리에서 나고 자란 자랑스런 보은인 그를 첫 대면한 인상은 샤프하다, 업무에 대한 거침없는 언변, 박진감, 타이트하게 시간을 쪼개서 한꺼번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보고 ‘역시’하며 무릎을 쳤다. 박진감 보다는 활기가 없고, 타이트함 보다는 느슨한 움직임이라는 느낌이 크게 와닿는 보은군 공무원과는 어딘가 모르게 달랐다.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중앙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부속실에는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인터뷰 내내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와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업무가 지속됐고 인터뷰 중간중간에는 부속실로 나가 찾아온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등 인터뷰가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회인초등학교(49회)와 청주 대성중학교 청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76년 공무원에 특채돼 국무총리실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85년 상공부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 2년간 국비로 미국 연수를 다녀왔으며 연수를 마치고 청와대에서 3년간 근무, 90년 다시 상공부 조선과장, 총무, 제철과장을 지내고 상공자원부로 개편된 이후 기획예산 담당관을 지내다 승진해 대전 엑스포 기념관에서 근무를 했다.

이후 다시 본부로 자리를 옮겨 공보관, 전력심의관, 주 일본 대사관 상무관, 2급인 산업기술국장을 지내다 1급으로 승진하면서 민주당 수석 전문위원에 파견돼 이번 참여정부 탄생과 함께 다시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으로 보직임명을 받은 것이다. 2002년 2월만해도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낙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위험수를 뒀다.

자칫 선거에서 질 경우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었지만 그는 조직이 결정한대로 따랐고 결국 정권을 인수받고 국정 정책개발 등의 국가 대업무에 참여하고 무사히 귀환(?)했다.
민주당 수석 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과 국가 균형개발이라는 측면에서 ‘행정 수도의 충청권 건설’업무의 실무 책임을 맡았으며 충청권 공약 중 경부 고속철도 오송역 설치, 청주 테크노파크 건설 등 충북 관련 정책을 많이 개발, 미약하나마 충북발전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기까지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그는 2월말 머리도 식힐겸 가족들과 조용히 속리산을 찾아 복천암까지 산보를 했다. 30년전의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속리산. 노후된 집단시설, 지구내 관광객 이용시설을 보고 관광객이 몰려들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심정이 느껴져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관광지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하고 맛있는 먹거리, 재미있는 놀거리, 가는 사람이 편하게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중요하다며 주민들이 지역을 어떻게 개발하겠다,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겠다는 아이디어를 창출하려는 자세와 노력, 의지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 송파에서 출발해 과천 청사에 도착하면 8시 20분경. 이때부터 근무를 시작해 퇴근시간 이후에도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과 만나고 일을 해결하는데 시간을 보내 퇴근해 집에 가면 보통 밤 10시. 보은출신 현직 국가 공무원으로는 최고 고위직에 오른 그는 돈도 없고 백그라운드도 없고 오로지 실력으로 매사 현재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한 것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 같다며 고향 주민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산업기술국장 재직시 영동대학교에 산업기술혁명센터라는 50억원 짜리 프로젝트를 지원했으며 보은의 탄광촌 개발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성회 회원으로 재경 보은군민들의 모임에도 짬을 내서 참석하려고 노력하는 그는 남부 3군을 포함한 고향 보은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초등학교 시절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고 뚫려 있는 하늘위로 나는 비행기를 보고 “나는 언제 저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하고 꿈을 키워 온 고향 애곡리에는 현재 숙부인 이상훈씨가 거주하고 부모님 묘소가 있어 가끔 방문해 고향을 가슴에 담아온다는 이현재 실장.

시간이 없어 즐기던 골프도 그만두고 요즘은 아침 30분 정도 조깅, 주말 3∼4시간 등산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으며 부인 김태숙(50)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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