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지역 발전의 견인차
내속리면…… 특히 삼가리, 구병리, 만수리 등 삼가지역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전 내속리면 민선면장 이복규씨(78)는 삼가리 도로가 포장되던 일, 못배운 한을 풀기위해 삼가국민학교 설립을 추진하던 일, 삼가저수지 건설에 앞장선 일 등 입이 닳도록 주민들을 계몽하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그 모두가, 고생하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내조하며 6남3녀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온 아내의 내조가 없었으면 엄두도 못내었을 일들이가ㅗ.이복규씨가 보은보통학교(17회)를 졸업한 지 얼마안돼 아버님께서 작고하시고 외가가 있던 삼가리로 이사하면서부터 줄곳 있어옷 곳이 내속리면 삼가리 - 두메산골이었던 삼가리 인근 5개마을에는 당시 이복규씨를 제외하면 글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정도였다. 이때 이복규씨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주민들을 모아놓고 한글과 한문, 산수를 가르치는 야학당의 선생님이 되었고, 21세때에 마을 이장일을 보기 시작하면서 지역발전은 물론 주민계몽에 적극 나서 주민들이 자신의 집안일도 이복규씨와 사으이해서 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워졌다.
그에 대한 신임은 삼가저수지 건설에 결사반대하던 주민들을 설득, 1백27가구의 농가를 이주시킨 일에서도 나타났고, 교육 소외지역인 삼가리에 삼가국민학교 설립을 추진해 문교부의 설립허가를 받은 것에서도 나타났다. 마을발전에 힘쓴 그의 공로를 기려 삼가국교 졸업생 재경향우회와 5개 마을 주민 일동이 1979년 삼가국교 부근에 공적비를 세워주었을 정도이다.
그래서 1960년 내속리면 면장선거에 출마했을 때 재력을 과시했던 타 후보를 물리치고 큰 표차로 당선되는 영광까지 안은 이복규씨는 비록 1년이 채 안되는 6개월간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에도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여 일했다. 이외에도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이 충북도를 순시했을 때 지역숙원사업이었던 삼가리 및 만수리 도로포장을 건의해 도로를 포장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자치단체장 선거를 두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한심하다고 개탄하는 이복규씨는 "가난하고 못배워서 소외당하는 이웃에게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부모에 효도하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라고 강조해 이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그동안 내무부장관상, 도지사상, 군수상 등 여러번의 수상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주민들이 도와준덕이라면 겸손해 하는 이복규씨는, 삼가리가 깨끗하게 보존되고 6남3녀의 자식들이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소박한 바램을 말한다. 현재 군지부 노인회 감사, 학구단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이복규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삼가리에서 부인과 막내딸과 함께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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