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부음
상태바
슬픈 부음
  • 보은신문
  • 승인 1992.05.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인성(보은 죽전)
멀리살고 있는 동창생의 모친상 부고를 받았다. 학교다닐 때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그분이 지어주신 밥도 먹었었고, 친어머니처럼 자상하던 그 모습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학창시절을 회상하면 늘 떠오르곤 하였다. 자주 만나보지도 못하고 또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소식이 적조하다 보니 무정한게 세월이듯 친구의 어머니 기억도 잊은 듯이 살았는데 부음을 받을 것이다. 그냥 지낼 수가 없어서 바쁜 생활속에서나마 시간을 내어 문상을 갔었다.

그런데 상가에서 들은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다. 작고 하신 분은 아들이 셋이고 딸이 둘인데, 살기가 요부(饒富)했던 집안이라 모두 다 공부를 잘 시켜서 오남매가 모두 외지에 나가 잘 살았다.

오남매를 출가시키고 노인 혼자서 종가를 지키며 사시다가, 이농으로 인해 마을에는 네집만 남았는데 외딴 터라 이웃의 왕래가 드물어 자식과 이웃이 알지도 못한 사이에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서 진자리, 다른자리 가려 재우며 손발이 다 닿도록 자식을 키우고 공부시킬 때는, 늙어서 꼭 도움을 받자는 뜻은 아니나 운명하기 직전에 자식들이 더운 물 한 모금 떠넣어 주는 위안은 당연한 것일텐데...... 사회가 급변하여 경로사상도 희박해지고, 핵가족 시대이면서 오남매 자식들이 직장따라 뿔뿔이 흩어져서 살기에 급급해 살다보니 어머니 임종은 고사하고 돌아가신 날도 모르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 마을의 네집중 두집은 전부터 살던 본토박이의 집이고 나머지 두집은 근년에 이사와 사는 형편이라 노인네만 있는 집에 왕래도 적었으며, 농사철이라 낮에는 들에서 일하고 늦게 돌아와 일찌감치 피곤한 몸을 누이다보니, 이웃에서 노인이 신음하다가 죽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는 며칠 전에 운명했는지도 모른다는 슬픈 이야기가 듣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예전 단발머리 소녀였던 상주의 여동생이 "불효막심한 딸년이 되고 말았다"며 나의 손을 붙잡고 울었던 것이 며칠을 두고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어쩌다 이같은 실정, 이같은 농촌이 되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