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출을 바라보며 홍유성죽의 휘호를 그려보던 첫달도 지나가고, 목표점을 향하여 앞으로만 훌쩍 내달리는 적마처럼 기세등등한 시간이다. 한해의 빗장을 열어제치고 부리나케 질주하던 세월이 입춘의 대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다. ‘작심삼일이나 조령모개를 반복하지 않으면 어찌 평범한 사람이라 하랴.’에 위안을 삼으면서, 어영부영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자신에게 채마가편을 날려보는 요즘이다.
차가운 침묵의 강을 건너와 안도의 숨 돌리며 꿈틀대는 2월이다. 2월은 무명인의 달. 겸손한 지혜의 달. 그리고 아름다운 소망의 달이다. 날수를 다른 달에게 빼앗겨서 자칫 무시당할 수도 있겠지만, 극단적인 아전인수적인 시대에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2월인가! 3월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하여 살포시 기지개를 켜는 정중동의 달. 봄에 필 꽃들을 우리 가슴에 먼저 피워주는 고마운 달인 것이다. 섣불리 제 안에서 호들갑스레 꽃을 피우진 않더라도, 우리의 영혼이 봄의 향기를 기다리게 하는 마중물의 달인 것이다. 사람도 2월처럼 서로에게 선물이 되고, 소망이 되고 사랑이 된다면야 그 얼마나 좋으랴 ~
오랜만에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며 나를 밖으로 불러내길래, 꽁꽁 긴장했다 이완작용을 하는 정원을 바스락대며 걸어본다. 나목 몇개를 지키던 텃새들이 봄마중을 하러 산등성이로 날아가고, 겨울바람에 시달리던 검불때기도 약동의 손수건을 흔들며, 소망의 불씨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나도 어두운 서랍 속에서 침묵하던 씨앗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새삼 어릴적 동시까지 웅얼대며 봄을 기다리는 중이다.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돋아나고,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나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가 숨어 있다’ 시리고도 아픈 가슴마다 꽃씨 하나 애틋이 품어 따스한 봄날이길 소망한다.
성경 마태복음에 적힌 겨자씨 한톨만한 믿음과 소망의 귀절도 선물이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커다란 나무가 되매, 온갖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니라.’고 하시며, 작은 것에 대한 참소망을 가르치고 계신다. 또한 주님은 로마서에서 자칫 인간의 지혜가 교만을 범할까봐, ‘서로가 높은데만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곳에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말라’ 고 경종을 울리셨다. 우주 안에 신비로운 작은 보물을 많이 숨겨 두었으니,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캐내어 네 것으로 삼으라는 말씀일 것이다. 자칫 욕망으로 이어질 대의에 집중하는 이들에게는, 큰 것에만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경고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작지만 신비스러운 자연의 섭리 가득하기 때문이리라. 작은 심지 하나가 온 방안을 밝혀주고, 버터플라이의 날개짓이 회오리를 일으키듯이, 작은 구름들이 모여 큰 소낙비를 내리고, 실개천이 모여 웅장한 폭포로 쏟아지듯이, 급기야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도 옮긴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그 작은 존재에 숨겨진 커다란 보물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바람이나 뜬구름같은 헛된 우상에 목숨 걸지 않더라도,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예언일 것이다. 작은 것들에 대한 소망의 불씨를 꺼트리지만 않는다면, 다가오는 저 봄날만으로도 정녕 우리는 행복에 잠기우리라.
곧 구정이 돌아오고 우수와 경칩 그리고 대보름까지, 선물꾸러미들을 연신 들고 찾아올 봄날이다. 지금 내 손바닥에 씨앗 하나도 우주의 자궁을 만나 싹이 돋으면, 잎나고 꽃이 피어나 수백배의 씨앗을 안겨줄 것이다. 자신을 거두어 준 주인과 함께 병오년 봄을 기다리며,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큰 소망을 이루어 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작은 자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며, 작은 일상에 감사와 소망을 품는다면, 우리도 훨씬 단조롭고도 행복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다시 희망을 껴안아야 한다. 희망은 태양의 위력처럼 기적을 안겨주는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가 병오년 첫달의 발자국을 뒤돌아보며, 다시 한번 희망의 나래를 펼쳐야 할 2월이기 때문이리라.
어디선가 얼음장 아래 동토를 녹이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들려온다. 설령 이 풍전등화같은 난국에서 돌파구 없는 절벽을 만난다고 하여도, 우리는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디선가 서서히 꺼져가는 작은 생명을 보살피면서,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한 한해로 엮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분투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태산도 옮길 수 있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야, 소망의 거목속에 깃드는 평화의 비둘기도 만날 수 있음이기에 ~ ~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