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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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주우며
  • 최재철 (거현산방)
  • 승인 2025.12.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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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낙엽을 태우며', '낙엽을 주우며' 하면, 여유로운 가을의 낭만을 연상하기 쉽다. 
  그런데 이게 책갈피에 끼울 단풍 잎새 한두 장이나 서너 장이 아니라 아침저녁 마당에 떨어진 상당량의 낙엽을 주워야 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무릎이나 허리를 조심하면서 서서히 시간을 늘려간다. 처음엔 다리도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면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이 된다. 헬스장이 따로 없다. 
  낙엽을 왜 줍느냐고 요.. 세 그루의 감나무 잎새가 떨어질 때 붉거나 노란색, 일부분 초록색 낙엽은 보기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연 갈색으로 변색이 되고 마르면 마당 자갈 사이에 드문드문 칙칙한 검은 색이 보기에 안 좋다. 그러니 마당에 떨어진 나무 잎새는 모아 버릴 수밖에 없다.
  비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한꺼번에 많이 떨어진 날은 빗자루나 갈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웬만하면 오고 가며 목장갑 낀 양손으로 낙엽을 줍는 편이 낫다. 한 참 낙엽을 줍다가 뒤돌아보면 깔끔하게 흰 자갈 깐 마당이 거기 펼쳐진 걸 보는 느낌도 좋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여기저기 반짝이기도 한다.
  잔자갈을 깐 고향집 마당이 아래, 위, 옆까지 합하면 150평 가까이 되리라. 마당에 자갈을 깐 이유를 누이에게 들은 바로는, 비가 오면 땅이 파이고 풀도 많이 자라서란다. 그러나, 자갈 위를 걸어 다니기에 불편하고 마당 청소할 때도 맨땅보다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갈을 밟고 다니면 발바닥에 지압 효과도 있는 거 같고, 대문 안에 누가 들어오면 저그벅저그벅 자갈 밟는 소리가 안채 안방에 누워 있어도 잘 들려서 방문객이 아래 마당에서 큰 소리로 부르거나 윗 마당 댓돌 위에 올라서기 전에 일어나 천천히 매무새를 가다듬고 여유 있게 내다 보는 장점도 있다. 
  처음엔 왜 잔디를 깔지 않았나 싶었지만, 정작 지내고 보니 시골 전원풍경이 온통 초록색이니까, 흰 자갈이 색깔의 변화를 주어 돋보인다. 마치 일본 고도(古都)의 '가레산스이(枯山水: 모래와 자갈, 바위만으로 꾸민 산천)' 정원처럼도 보여, 문학을 전공한 원로가 다녀가신 후, 거현산방의 하얀 마당이 멋지다고 하여, 새삼스레 그런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는데, 이게 다 그날 아침에 낙엽을 주우며 떠오른 생각들이니까...낙엽을 주우며 수필 글감이 술술 풀린다.
  낙엽을 주울 때나 텃밭 잡초를 뽑거나 할 때 대개 코팅 목장갑을 사용하는데, 이건 한국인의 발명품(?!)으로 외국에도 수출할 정도라니 꽤 편리하다. 이 코팅 목장갑은 대개 흰 목장갑의 손바닥 부분과 각 손가락 한 마디 정도쯤 빨강이나 초록 페인트를 칠해 놓은 거뿐이지만, 맨 장갑보다 질기고 물컹한 데 닿아도 잘 젖지 않고 때도 안 타 자주 애용한다. 
  그런데 자갈 위나 사이에 낀 낙엽을 주울 때 자주 접촉하는 부분이 목장갑의 오른쪽 검지 끝부분이다. 사용하다 보면 여기가 먼저 뚫어지고 그다음이 왼쪽 검지, 오른쪽 중지... 이런 식으로 구멍이 나는데, 낙엽을 주울 때 이 맨 손가락 끝이 자갈이나 흙에 닿아 아프기 시작한다. 그럼 폐기해야 한다. 좌우 장갑의 나머지 여섯 손가락은 멀쩡해서 바로 버리기가 아쉬워 모아두고 보면 뚫어진 장갑이 모두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 일할 때 요즘엔 엉덩이에 달고 움직이며 잡초 뽑는 목욕탕 받침대 모양의 둥근 깔개를 사용한다. (어머니 계실 때 이런 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허리를 펴고 앞산을 보면 은빛 억새가 무리 지어 바람에 흔들린다. 눈을 들어 보은 3산 중 하나인 금적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거기 기와지붕 모양의 반듯한 능선이 보이고 그 위엔 흰 구름의 배경으로 파란 하늘이 선명하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를 극명하게 느끼게 하는 늦가을, 단풍 들고 낙엽 지는 이 계절의 끝에 낙엽을 주우며 생각한다. 인생도 또한 이와 같다고... 어느 순간 낙엽이 다 지고 나면, 주울 일도 없다. 앙상한 가지를 올려다보곤, 힘들어도 할 일이 있을 때가 좋았지.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고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면서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한다. 
  어느새 세밑이다. 한 해를 감사로 마무리하고 새해를 기쁘게 맞이해야겠다.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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