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구암리 이이석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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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부면 구암리 이이석 할아버지
  • 송진선
  • 승인 199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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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함께 구십평생 『내 인생의 활력소』
자동차 홍수로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메우는 지금, 젊은이도 아니고 90세나 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영화를 찍기 위해 일부러 노인을 분장한 배우가 연출하지 않는 한은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다. 마디굵은 손, 깊게 패인 주름, 여유있는 웃음이 풍요로운 가을만큼이나 정답고, 자전거와 함께 한 삶인 것처럼 매일매일 좁은 노둑길을 자전거로 달려 햇살이 내려앉은 맑은 시냇물에 얼굴을 비춰보며 지나갈 인생의 흔적을 찾는 이이석 할아버지(90. 탄부 구암).

어느새 세월을 따라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자전거 패달에 인생을 싣고 살아온 노정(路程)은 그에게 지금까지도 건강을 지탱해주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1901년 탄부면 구암리에서 태어나, 옥천군청에 근무하던 시절, 18세의 나이에 사모하던 하숙집 딸과 혼례를 올렸다. 이 할아버지가 직장관계로 밖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고 대정 15년 1925년 마로우체국에 근무하면서 더욱 바빠져 자전거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자전거가 귀했던 지난날에는 이상하게 생긴 것을 타고 거리를 다니는 이할아버지를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훔쳐보았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 또한 일품이어서 다리가 아프도록 울퉁불퉁한 흙먼지길을 매일매일 달렸다.

고생만 실컷 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각나면 자전거를 타고 냇가로 달려가 물위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고. 퇴직후에 농사를 지으면서 물꼬를 보러갈 때나 비료를 주러갈 때에도 그의 운송수단은 오직 하나 자전거였으며, 지금까지도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애용해, 고장나면 스스로 고칠 정도로 자전거는 그의 신체의 일부분이 되어 주고 있다. 부지런한 생활과 70년간 자전거를 타며 다져진 신체여서인지 크게 아픈데 없이 걸음도 가볍고 목소리도 우렁차며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총기를 자랑하는 이이석 할아버지는 서울, 대전, 전주등지에 살고 있는 5남4녀의 자식들을 보기위해 혼자 나들이를 다녀올 정도로 정정하다.

구암리에서 3㎞도 넘는 삼승면 원남리의 원남노인정까지, 어느때는 보은읍에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올 정도이고 보면, 프로 사이클 선수를 뺨칠 정도이다. "뭐든지 다 잘 잡수세요. 닭고기도 좋아하시구요.

잘 모시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겸손해하는 넷째 며느리 김점자씨(43)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이석 할아버지는 "방구들이나 지키고 있으면 맨 쑤시고 아픈데 천지인겨, 건강하려면 자꾸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하는겨"라고 말하면서 부엌의 부지깽이도 일손이 되는 바쁜 추수철……일손을 거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널어놓은 고추도 뒤적이고, 썰어 넣은 호박도 뒤적이며 빨갛게 잘익은 홍시를 손주에게 주기위해 거둬들이기도 하면서, 가을의 서정이 뚝뚝 묻어나는 들판을 자전거로 힘차게 가로지른다.


(금주에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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