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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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 사이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4.12.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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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책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이거야.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이치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도 이에 대한 명언을 많이 남기고 어른들은 네가 먼저 마음을 주라고 하신다. 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을 내 맘대로 못한다는 것. 사람들은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나는 그 말 믿을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 비우기를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을 바꾸는 정도로 그치곤 했다. 
원재스님의 책 ‘나, 아직 열리지 않은 선물’이라는 책을 읽다가 해인사에서 공부하는 학인 스님이 큰스님에게 “스님 깨닫지 못한 저희와 깨달으신 큰스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마음일세, 자네는 마음이 자네를 부리지, 나는 내가 마음을 부린다네,” 하셨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친 것이다. 
아, 내 맘을 내 맘대로 못하는 것은 내가 간직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마음속에는 살아오면서 저장한 모든 기억들 중 자신이 거부하고 싶은 기억, 잊고 싶은 나쁜 기억의 세력이 더 강하다는 의미다. 
깨닫는 다는 것은 꽉 채우고 있는 맘속의 못된 세력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고 선하게 아름답게 바꿀 수 있구나. 내 맘이 온전히 내 것이 되셨으니 마음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지까지는 언감생심이고 조금씩 가슴속 뜰에 자리를 비우려고 노력한다. 무조건 화초로 채우려는 것도 아니고 손님맞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진작부터 차지하고 있던 가족들의 자리도 새로이 단장을 하는 것이다.
당신 부부의 마음과 마음 사이는 무엇이 있을까? 당신과 자녀들 사이는? 친구간의 두 마음은 무엇으로 연결 되어있을까. 
상담사 일을 하던 육십 대 초년에 내가 보듬고 안아주던 모자가 있었다.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부부갈등까지 견딜 수 없어 이혼 수속 없이 무일푼으로 집을 나간 아이엄마는 어느 암자에서 공양간 일을 하며 틈만 나면 아들위한 기도가 일상이었다고 했다. 소식을 끊고 있던 시댁은 IMF로 인해 살기 어려워졌고 십여 년 사이에 남편은 간암으로 시아버지는 노환으로 영면하셨지만 모르고 있었단다. 어린 아들이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안부가 궁금해서 찾아갔더니 아파트도 팔리고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서 할머니 영세민 보조금과 아들이 알바일 해서 연명하다보니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상태였다. 7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돈과 사정을 알게 된 주지스님의 도움으로 아들의 학원비와 학비 걱정은 없게 되었지만 문제는 아들의 마음이었다. 힘들 때마다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했던 기억덩이로 꽉 찬 아들의 마음에 엄마의 자리는 없다. 
그러던 중 할머니 49제를 그 암자에 모셨는데 거기 법당에서 작은 부처님이 여럿 모셔진 앞에서 자신의 명찰을 발견한 아들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기도를 읽은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마음이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미움과 원망으로 너무나 단단해서 본인도 엄마도 힘들던 그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가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귀에 들어오고 데리고 갈 수 없었던 엄마의 심정도 가슴 속 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의 밝아진 모습, 쑥쑥 오르는 성적은 말하지 않아도 모자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믿음이 생긴 것이 보였다. 비온 뒤의 땅처럼 더 단단한 믿음은 서로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마음속에 못된 기억들 나쁜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으니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내가 부리고 싶으면 자리를 조금씩 비워서 닦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미움도 원망도 용서하고 보듬다보면 뿌듯한 느낌이 온다. 양보하는 보람, 나누는 보람, 용서하는 보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많이 체험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본인이 더 고통이다.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믿음으로 연결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까.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절대불가의 꿈인 것 같다. 여의도는 괄호 밖으로 내다 버리고 우리는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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