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창문을 닫고도 선풍기를 끄고도 잠을 잘 잤으니 참 감사한 아침이다. 후덥지근하고 무더웠던 공포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온 안도감이 도는 아침이다. 현관문을 열고 초가을 햇살 가득한 데크로 나가니, 어디선가 일성호가 대신 풀벌레 소리 자지러진다. 제철이 끝난다고 구슬프게 울어대는 미물의 울음소리. 그조차도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건 계절 탓일까? 아니면 나이 탓일까! 지난 무상한 세월 속에 사라진 건 별뿐이 아니라, 그리운 이름들이다. 새벽 물안개 속에서 건져 올리고 싶은 다정한 영혼들이다. 허리를 휘감아 돌던 선선한 바람 한 가닥이 여름을 배웅하는 중이다. 어릴 적 하나님이 주신 대형 수영장인 마을 앞 시냇물이 그리웠던 여름이었다. 어스름 달밤에 남녀노소 할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첨벙첨벙, 시끌벅적 멱을 감던 소통의 장이 그리웠던 여름밤이었다.
이젠 농번기에 물 빠져서 삭막했던 호수마다 새 물은 차오르고, 강물 줄기는 시퍼런 꼬리를 흔들어대며 다시 흐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로 시작되는 詩『우화의 강』이 절로 웅얼거려진다. 사람도 서로 물을 주고받으며 교류해야만 상생의 꽃을 피울 것이기에, 장마철 웅덩이처럼 막히면 썩고 불통하면 죽을 것이기에, 저 강물처럼 흐르고 흐르면서 아름다운 소통을 이어가야 할 것이리라.
몇 년 전, 우리집 앞 문전옥답 건너편에는 연립주택 15채가 들어섰다. 나는 이 주택들을 바라볼 때마다 세상이 참으로 적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창문을 열고 눈인사 한번 없으니 얼굴도 모른 채, 그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궁금한 채로 세월만 흘러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같으면 집집마다 숟가락 수까지 셀 정도로 친밀했었건만, 이 시대 모든 소리는 유리벽 저 넘어로 잠들어 가고,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그저 고요하고 적막함 뿐이다. 진정 소통의 강물 줄기가 긴요하고 다급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나이 든 어른들의 한탄을 늙어보지 않은 젊은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하고,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어른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격세지감. 일하다 죽는 산재 노동자들의 절박한 절규. 타협이 보이지 않는 의료계 집단이탈 행위. 출구가 없는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적 발언 등. 대화의 물꼬가 막힘으로써 집단규탄과 쟁의농성으로 이어지는 나날이 아닌가!
우리는 잡읍과 소음만 가득하여 마음의 전달이 어려운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또한 처음 나왔을 때는 은근히 기대했던 단톡이란 놈도 마찬가지다. 자기 편견이나 과시적 홍보용으로 옹달샘 흐려놓는 미꾸라지파들이 난무하니, 텔레파시가 어려운 단톡소통, 단체모임은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다. 누구나 不可得而親(불가득이친) 亦不可得而踐(역불가득이친)의 교훈을 적용하여서, 과대포장과 가식이 없는 진솔한 소통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솔한 소통이란 열린 마음인가, 닫힌 마음인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열린 마음의 각도에 따라서 대화의 방향이 바뀌게 되고, 수용적 경청의 자세에 따라 상생과 상사의 경계가 정해진다. 마음을 비워 본성을 찾으면 소통과 공존은 절로 이루어질 것이기에, 어떠한 위선도 없는 내 모습 그대로를 교류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리라. 사람들 간의 소통도 주거니 받거니 온전한 거래이기 때문이리라.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순환의 이치처럼 ~ 장맛비 그치고 운무가 걷히면서 부우연히 드러나는 저 산등성이처럼 ~ 너와 나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관계의 먹구름을 거두어야 할 시대이다.
저 유유히 흘러가는 가을의 푸르른 강물처럼, 맑고도 시원하고 고운 대화로 세상을 밝혀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소리가 빈 종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오로지 진솔하고 열린 마음만을 주춧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우화의 강』을 노래한 시인은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는 없겠지만, 너의 영혼이 잠잘 때 내가 지켜주며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 위에 마음의 다리를 놓아줘야 한다’고, 소통의 미를 예찬하였다. 아마도 칠석날 밤 점점 차오르는 상현달을 바라보며, 새들이 만든 노둣돌을 딛고 만난 연인의 대화가 그리했으리라. 아마도 고금동서를 통하여 최고의 아름답고도 은밀한 소통을 오작교(烏鵲橋) 위에서 나누었으리라.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