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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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밉다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4.07.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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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는 내 두 손을 만지며 잠을 설쳤다.  
내가 세상에서 덤벙거린 세월이 짧지는 않은데, 꼭 잡은 두 분의 손이 이렇게 애절해 보이면서도 강한 전율을 느끼긴 처음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럽기도 하고 아름답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로 표현을 하고 싶다. 손과 손 사이에 흐르는 간절함이 찐하게 숨어 있고  주고받는 두 분의 시선엔 ‘손 놓지 마’ ‘알았어요’ 대화가 흐른다. 떨어질까 불안한 옅은 공포감마저 서려있다. 자식들 다 키운 후는 한 번도 저토록 간절하게 누군가의 손을 잡아 본 적이 없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미안한 생각에 얼른 손녀의 손을 잡았다. 
가족이 모여서 외식을 하고 영화관엘 같다가 끝나고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오자 혼잡했다. 그때 둘이서 손을 꼭 잡고 바삐 움직이는 노부부를 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이 윤기가 흐르고 참 곱고 맑은 피부는 아마도 평생 좋은 생각, 좋은 일만 하신 분으로 보였다. 
집으로 오면서 딸이 짓궂은 농을 한다. “엄마 나오실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잡고 있는 손에 유난히 시선이 꽂히던데요?”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살짝 쑥스럽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옛날에 왜 그렇게 아빠 손을 뿌리쳤는지 몰라.” 그나마 딸이 나를 변명해준다. “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그랬잖아요, 아무래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죠.”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요즘은 아빠한테 미안한 생각이 참 많아, 그러니까 니들은 원 없이 즐기며 살어.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나는 즐기지 못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남보다 더 여행도 많이 하고 즐기며 살았다. 단순하게 손잡자는 걸 많이 뿌리쳤다는 것이 맘에 걸린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꼭 잡은 두 손이 영상을 보듯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이에게 하도 미안해서 다시 내 손을 꺼내놓고 미워하고 있다. 무에 그리도 대단한 손이라고 매번 응해주지 못하고 뿌리치기만 했던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으려 하면 톡톡 뿌리쳤으니 그때마다 그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오늘 그분들이 잡은 손은 그냥 손이 아니다. 은근히 단단하고 깊은 정, 바로 정 다발이요 끈기 있게 지켜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배품이다. 물론 붐비는 사람들 때문이기 도 하지만 오랜 세월 잡아온 익숙함이 배어있는 손이었다. 
아무리 정다운 부부라도 살다보면 삐거덕 거릴 때가 있다. 그때마다 먼저 손 내밀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아마 잘못 알고 있는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자존심이란 그 깊은 의미를 몰랐으니 먼저 내미는 손이 우월한 손이라는 걸 몰랐다. 이래저래 오늘은 볼수록 내 손이 밉다. 
모두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이가 진심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 정도면 많이 서운해서 한마디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끝내 싱글거리며 내 손을 잡고야 만다. 그런데 내가 나를 이해 못하는 점은 손잡고 걷는 것이 싫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대화라도 손잡고 나누면서 걷다보면 엊저녁에 있었던 말다툼도 사르르 잠들어 버린다. 묘한 이치다. 그냥 아무 뜻 없이 잡기만 해도 마음이 따라와서 상통하게 된다는 이치를 진즉 깨우쳤으면 후회 없는 자기 경영을 했을 터이다. 손도 자꾸 잡아야 어색하지 않을 텐데 그 이치를 우매하게도 그이 보내고 이제야 알게 되다니 지난 세월 물리고 싶다. 
얼마 전 단체 행사에서 각 단체장들과 기관장들과 악수를 나누는데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손이 살짝 닿는 정도로 악수를 하는 것이 관례다. 그날은 의외로 힘 있게 꼭 잡는 분이 있었는데 부임해 오시고 처음 인사 나누는 분이였다. 그 손에서 나는  ‘앞으로 열심히 임무 수행 할 것이니 눈여겨 봐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그분의 마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참 우매하게도 손으로도 소통을 하는 지혜도 터득하지 못했다. 손과 손 사이에 사랑도 흐르고 정도 흐르지만 잘해보자는 신호와 응답도 흐른다. 
볼수록 내 손은 아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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