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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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의 술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4.06.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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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가끔 만났던 인도네시아 명문 가쟈마다대학교의 교수 한 분의 이야기다. 그는 2005년 우리나라에서 해양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열성파 지한인사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 또한 김치 마니아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한국은 천국이었고, 유학을 알선하고 추천서를 써 준 필자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를 준 분이라는 찬사를 학위논문 서문에 쓰고 있다. 
   입학 허가를 받은 대학에서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술자리가 너무 많았다. 처음부터 자신이 이슬람교도 무슬림임을 밝히고 술을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 지도교수가 말했다. 술 못 마시는 내 박사 제자는 없는데, 이를 어쩌나. 그러면 좋다. 학위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잔은 꼭 해야 한다. 어쩌겠냐? 그는 마지못해 이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 말았다. 학위를 받고 동료 석박사과정생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가진 회식 자리에 예의 지도교수도 참석했다. 그는 눈 딱 감고 지도교수가 건네는 축하주 소주 한 잔을 받아 마셨다.  
   그는 귀국 후 만 3년 동안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서 하루 다섯 번 행하는 기도에서 빠짐없이 알라 (Allah)께 사죄했다. 제가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알라의 가르침을 거역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박사학위 덕분에 학장으로 선출되고 곧 정교수가 되어 석학으로 대접받게 되었으며, 덩달아 가족 일도 순탄하게 풀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마신 소주 한 잔 때문에 항상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래서 그는 메카 성지순례를 서둘렀다. 메카의 마지막 날 밤에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밤을 꼬박 새워 운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50년 동안 그렇게 많이, 그것도 엉엉 소리 나게 울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알라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선 겨울이 길고 몹시 춥다는 사실이다. 그가 공부한 강릉은 자주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바람까지 세차다. 이런 때 몸을 훈훈하게 덥히는 데는 술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가 동료들에서 전해 들은 우스갯소리 중에 러시아 사람들은 아내 없이는 살아도 보드카(술) 없이는 못 산다는 게 있다.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한국은 어느 곳이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 국토의 67%가 산지라고 했다. 토양이 척박하다. 그런데도 지난 1960대 말까지도 한국은 농업국가로 분류되고 있었다. 힘에 부친 농사일을 하는데 한 잔 술이 활력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술값이 저렴하여 성인이면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슬람 율법은 금주(禁酒)를 명시하고 있다. 금주 율법은 술이 있고 술의 폐해가 컸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오늘날 불가리아·마케도니아·그리스·이란이 위치한 광역 레반트(Levant) 지역에는 포도가 많이 산출되었다. 냉장 보관이 쉽지 않았던 시대에 달콤한 포도는 더운 날씨에 쉽게 알코올 성분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와인의 원천이다. 이슬람 세계에 와인 다음으로 커피가 소개되고, 음주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면서 커피가 와인을 대체하였다. 그래서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으로 불린다. 곡주(穀酒) 위스키의 역사도 이슬람 연금술사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물, 불, 공기, 흙으로 영생(永生)의 물질을 만들어 내려는 연금술사들의 탐구적 노력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삭힌 곡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빛깔과 향기를 간직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랍에서 연금술은 알 끼미야(al-Kymiya)라고 했다. 화학(化學) 케미스트리의 어원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술을 지칭하는 단어 ‘아라끄(araq)’는 범세계적인 문화어휘이다. 아라끄의 원래의 의미는 뜻밖에도 땀(汗)이다. 밀주를 만드는 중동지역에서 대추야자의 과즙을 발효시킨 후, 이를 증류해서 아라끄를 만든다. 이때 땀방울처럼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진 것을 모아서 아라끄가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설명도 있다. 아라끄의 알코올 도수가 50도가 넘을 만큼 높아서 이를 마시면 땀이 난다고 해서 부쳐졌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경상도에도 ‘아래기’라는 토속어가 남아있다. 소주를 곤 뒤에 남은 찌꺼기로 만든 질이 낮고 독한 아랑주(酒)를 지칭하는 방언이다. 이슬람 세계를 정복했던 몽고의 술 아라키(araki)에서 전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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