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청송감호소 근무 시절, 야간에 교대를 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보안과에서 서무가 다급한 목소리로, 여사에서 싸움이 났으니 어서 달려가 보라고 한다. 이미 감독교사가 같으니, 뒤에 가는 직원들은 수갑과 포승줄을 가지고 가라는 말을 덧붙인다.
가끔 여자들이 싸우면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데, 감호소에 있는 여자 재소자들 중 누군가는 남자들처럼 발로 차고 주먹으로 싸우기도 한다. 이번에는 저녁 식사 배식을 하다 싸움이 붙었는데, 누구 방에는 반찬을 더 주고, 또 누구 방에는 반찬을 덜 주고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여사에 도착하니 양동이와 식기가 나동그라져 있어 이미 난장판이며, 여자 둘이 마치 이종 격투기 선수처럼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여사 담당 직원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앞서 간 감독 교사인 정 모 교사는 보이질 않았다. 여자 재소자들이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와중에 여자 재소자 몸집에 깔려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어디서 포주를 한다는 이 모 여인은 체중이 100㎏에 육박했고, 다른 김 모 여자 재소자도 85㎏이 넘는 거구였다. 이들이 남자와 비슷한 체중에 몸집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몸무게도 겨우 56㎏인 우리의 정 모 교사는 이 여자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그만 그들의 틈새에 깔려 버린 것이다.
수갑을 채우고 보안과로 데리고 와 보니, 보안과 조사실이 언제 이렇게 비좁았나 싶을 정도로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무슨 여자들의 덩치가 이렇게 큰지, 우리 정 모 교사가 몸집이 작아 여자들한테 깔린 상황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하기야 유명한 사창가 어디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이 정도는 되고 이 정도 완력이 있어야 골목을 휘어잡고 벌어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시멘트벽에 돌진하는 멧돼지
천태만상 각양각색의 재소자를 상대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때로는 “담당님, 부장님, 이것은 무엇입니까?”, “어디가 아파요.”라면서 끊임없이 교도관을 귀찮게 하는 재소자가 있는 반면,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갑자기 조그만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자기 머리를 시멘트벽에 들이박는 재소자도 있다.
내가 근무하면서 담당하던 최 모 수용자가 떠오른다. 경북 경주가 고향인 그는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동료와 다투고 나서는 담당 근무자가 제지할 겨를도 없이 시멘트벽에 무작정 머리를 들이박고 피를 철철 흘리며 드러누워 버렸다.
과거에도 몇 차례 머리를 부딪쳐 꿰맨 상처 자국이 많은데, 또 머리를, 그것도 단단한 시멘트벽에 들이박는 바람에 그야말로 ‘피를 쏟고’ 있다. 그런데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 혹시 피를 흘리는 데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재소자이다.
자기 신체 자해로 결국 징벌조치 됐지만, 어쩐 일인지 재소자는 말도 없이 멧돼지 같이 씩씩거리기만 한다. 왜 이런 일이 무슨 사유로 발생하였는가에 대하여 담당 근무자는 오늘 세세하게 근무경위서를 써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