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꽃을 피우는 절기
상태바
마음에 꽃을 피우는 절기
  • 청라 김종례(문학인)
  • 승인 2024.04.11 04: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무래도 4월의 프롤로그는 보은 벚꽃길부터 출발함이 좋을 듯하다. 벚꽃 축제 는 지났지만 이제라도 피어나 천상의 미소로 초면수작을 건넨다. 가족끼리 지인끼리 어울려 꽃길을 걷는 군민들의 얼굴에도 화기가 돌고, 한없이 끝없이 봄길을 걷는 이들의 가슴마다 봄 향기 가득하다. 잠시의 몽환 속에서 깨어나 집에 돌아와서는 겨우내 정원을 가렸던 창문뽀뽀기를 걷어내었다. 울타리처럼 삥 둘러선 태봉산과 우주를 얼싸안은 들판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작은 정원의 첫 주자가 된 백목련이 천개쯤의 등불을 켜들고 온 집안을 밝혀준다. 세속의 시간들을 무사히 통과한 후, 천상에 날아오르는 백조의 모습이라 할까. 무슨 아픈 사연이 그리도 많았길래 저리도 순백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일까. 평생 우여곡절 고통만을 안고 사셨던 내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빛을 닮았다. 진달래 붉게 지펴진 봄산을 바라보며 뜨거워졌던 내 마음이 식어버린 이유이다. 
  우주의 알람소리에 놀라 깨어나 성급하게 찾아 온 봄이다. 잠시 피었다 지는 꽃들의 순차적인 행진은 신비롭고도 질서정연하다. 산하대지 안전화(山河大地 眼前花)라는 말처럼 바야흐로 눈앞에 꽃바다를 이룰 조짐이다. 축복처럼 피어나서 휴식도 없이 날아드는 붉은 꽃빛. 어디를 바라보아도 붉은 몸짓 가득한 요즘이다. 천지를 흔들어대는 붉은 울음으로 봄의 교향악이 완주되면, 가슴 두근거리며 봄을 기다린 이들이 이내 꽂혀버리는 4월이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성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이 되면서 4월은 왔다.  오늘은 우리의 전통적인 절기 5번째가 되는 청명인데, 하늘과 땅이 차차로 맑아진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해 맑고 바람 소슬하여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절기에, 고목에도 일렁대는 꽃바람, 삭정이에도 불어대는 잎바람을 절감하게 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가를 흥얼거리고 싶은 요즘이 아닌가. 해마다 부활절과 청명일이 이렇게 맞물려 있다는 것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우주 만물이 긴 겨울의 침묵을 견뎌내고 다시 꽃을 피우고 잎을 내듯이, 영혼의 꽃을 피워내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은 인간에게 참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등대같은 길라잡이 말씀으로 영혼의 부활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로만 치솟으려는 야망과 혼자만이 살아남겠다는 투쟁심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고뇌의 도성에 갇힌 이들이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花香千里行(화향천리행) 人德萬年薰(인덕만년훈)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년을 간다’는 뜻인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향기가 온 누리에 퍼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우주와 인간이 합심하여 희망을 노래하는 4월에는, 아직 24절기 중 6번째 절기인 곡우가 남아있다. 단 봄비에 백곡이 기름지게 된다는 뜻이라 전하는데, 겨우내 만수를 이뤘던 저수지마다 물문을 열어 제치고, 본격적으로 못자리 만들기 같은 농사일이 시작되는 절기이다.  
   목련도 피어난지 한주가 지나기도 전에 이미 후기를 쓰는 중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이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제 몸을 산화하며 가르치는 중이다. 한번 피어나 열흘 붉은 꽃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씨앗 뿌려 하루만에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만, 꽃망울 하나에 두송이 피어나는 행복이 어디 있으랴만, 저마다의 가슴에 소망의 봄바람을 안아서 행복의 불씨를 피워내야 할 것이다. 변화무쌍한 생명의 변주곡은 꽃비도 징하게 내린 후에야, 봄의 열정은 점점 식어질 것이다. 꽃씨를 뿌려준 이를 점점 잊어가면서 ~ 피었다가 진 꽃에 대한 기억들만 봄바람에 난무하리라. 바야흐로 푸르른 잎새 까꿍거리며 4월의 에필로그도 막을 내리면, 꽃그늘로 보답해 준 절기마다 감사의 손짓을 할 뿐이다. 우리네 삶의 텃밭에도 꽃향기보다 진한 삶의 향기가 넘치기를, 한해의 행복을 다시 기원하는 4월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4월에는 내 안에 핀 꽃을 모두가 볼 수 있게 마음을 활짝 열어보라. 4월이 가기 전에 가슴에 핀 향기로 누구에겐가 꽃 같은 선물이 되어보라. 올해도 이 아름다운 4월 속에서 내가 먼저 사랑하며, 1년 중 가장 행복한 달로 만들어보라.’고 부탁하였다. 아, 나도 천지를 물들였던 봄의 물살에 그리움 하나 영원히 떠나보낸 후, 마냥 행복해지고만 싶은 4월이어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