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 흘러간 물 다시 청산에 잠긴다
“속리산 천왕봉 발원수, 청산에서 금강을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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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고 흘러간 물 다시 청산에 잠긴다
“속리산 천왕봉 발원수, 청산에서 금강을 만난다 ”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4.03.0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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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속리산 천왕봉 금강을 만들다.

글 싣는 순서
1. 하늘아래 첫동네 신선을 만들다. 
2. 물은 흘러 속리구곡이라 부른다.
3. 동학농민군의 처절한 외침을 듣다. 
4. 고봉 김정선생, 이상정치를 키우다
5. 깃대의 기상과 오천 군사 목을 축이다.
6. 절세의 기게 최수성의 마을 원정리.
7. 흐르고 흘러간 물 다시 청산에 잠긴다.
8. 비단의 금강, 백제 문화를 만들다.

 작은 개울이든 큰 강줄기는 그 시작이 있으며 산을 넘지 못하고 아래로 흐른다. 속리산 천왕봉은 옛 고서 &#11810;신동국여지승람&#11813;에 따르면 ‘속리(俗離) 삼파수(三波水)라 불리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은 아래로 흘러 한강, 낙동강, 그리고 금강으로 흘러 세갈래로 흐른다고 전하고 있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작은 하천이 모여 우리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 다시 아래로 흐른다. 
보은은 지정학적으로 백두대간중 한남금북정맥을 배산을 형성하고 있어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의 발원지 마을을 따라 삶의 터전속에 묻어 있는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편집자주>

 

옥천군 청산면 보청천 강변.
옥천군 청산면 보청천 강변.

“청산 한곡리의 동학교도들 보청천 따라 장안으로 오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삼가천에서 적암천과 만나 보청천을 만나 제법 큼 강줄기로 이제 옥천군 청산에 머문다.
고려 태조때(940년)부터 '청산헌' 으로 불려 2017년 지명탄생 1077년을 자랑하는 10m 높이의 '지명탄생 1000주년 기념탑'을 세운 곳이다. 
옥천군 청산면 도착한 보청천의 물줄기는 청산에서 물의 흐름은 서쪽으로 바꾸면서 청산면 일대에 청산분지를 만들고 청성면 장수리 일대의 산지를 남북으로 감입곡류(嵌入曲流)하면서 고당리 부근에서 금강 상류로 흘러든다. 보청천은 금강 상류에서 보은·청산의 두 분지를 형성하여 보은과 같은 큰 도읍을 이루었다. 
충북 옥천군의 북동쪽에 위치한 곳 청산면에서 물길따라 청성면 방향으로 4km쯤 이동하면 보청천 한가운데 우뚝 솟은 절벽위에 정자 상춘정이 한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낸다.
이 상춘정은 1970년대 건축물로 정자의 이름처럼 늘 봄과 같이 아름다운데 특히 샛노란 개나리가 예쁘게 꽃을 피워내는 봄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수면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 밤하늘의 은하수 등 또 다른 소재들이 사진작가님들의 인기 명소다.
제비집처럼 생긴 정자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들고 보청천에 물이 적을 때는 아래편의 보를 건너 정자에 오를 수 있다.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는 입구찾기가 살짝 어렵지만 막상 정자에 오르면 보청천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는 풍광이 펼쳐진다. 상춘정의 뜻은  “주변 풍경이 늘 봄과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70년대 박춘식 청성면장이 주도해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상춘정은 원래는 속리산의 일부였는데 옛날 대홍수 때 속리산에서 떨어져 나와 이 곳 산계리까지 떠내려 왔다고 한다. 속리산의 일부가 떠내려 가자 법주사에서 떨어져 나간 일부를 찾으려고 청산 현감에게 스님을 보내 독산이 원래 속리산 소유이니 매년 임대료를 내라고 하자 그러던 어느 해 새로 부임한 현감이 임대료를 받으러 온 스님에게 그 독산은 우리 현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면서 그 산을 수년 동안 청산현에 두어 불편했으니 그 동안의 보관료를 지불할때까지 스님을 가둬 놓았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법주사에서는 보관료를 지불하고서야 스님을 데려 갔으며 그 후로는 오히려 속리산에서 보관료를 지불했다고 하는 재미있는 독산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상춘정을 떠받치고 있는 보청천은 보은 속리산 자락에서 시작해 옥천의 동쪽 마을 청산면으로 흘러들고 이웃한 청성면을 거친 후 금강 본류와 합류한다. 이 상춘정의 서쪽 방향이 청성면이다. 옥천군에서는 이 상춘정을 금강 비경 11곳 중 한 곳으로 선정해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상춘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청산면 한곡리에는 1893년 3월 동학교도 수천명이 교주인 최시형과 집회를 하다가 관군에게 쫓겨 보은 장안면에서 있었던 보은집회로 갔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곡리 마을의 문바위에는 주동자인 박희근 등 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피난 온 최시형은 아는 것이 많고 잘생긴 김낙현(안산김씨)의 집에 기거하며 김낙현과 시국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마을에 거주하던 동학도들이 보은으로 퇴각 후 관군이 마을에 들어와 불을 지르고 동학군을 고발시 현상금을 내걸어 한곡리로 피난해 있던 김낙현은 1898년 4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고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1893년 3월 청산면 한곡리에 머물던 최시형과 동학도들은 보청천 강줄기 따라 속리산 장안마을로 쉼없이 오르내리던 그 날에도 푸르디 푸른 강물은 하염없이 흘르고 있었을 것이다. 

청산면 청산보.
청산면 청산보.
청산면 지명 1000년 기념탑.
청산면 지명 1000년 기념탑.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
청산면 상춘정.
청산면 상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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