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의 추억
상태바
정월 대보름의 추억
  • 최동철
  • 승인 2024.02.22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08>

 낼모레는 정월 대보름이다. 음력으로 1월 15일, 새해 들어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그래서 이날 밤엔 풍년 농사와 액운이나 질병 없는 한 해의 무사태평을 기원한다. 정월 대보름은 상원(上元) 또는 오기일이라고도 부르며 우리나라 세시풍속에서는 설보다 더 큰 명절로 여겼다.

 정월 대보름의 최초 기록이라 할 삼국유사 권 1 ‘기이(紀異)’편에 오기일에 대한 우화가 실려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에서 산책하던 중, 쥐와 까마귀가 다가와 따라오라고 한다.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봉투를 바쳤다.

 그 봉투 겉면에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쓰여 있다. 신하가 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라”라고 했다. 열어보니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라고 적혀 있다. 왕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간통하며 왕을 죽이려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죽었다.

 소지왕은 생명의 은인 까마귀에 보은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식을 지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고 전한다. 
 각설하고, 새해 첫날인 설이 각 가정 단위로 차례를 지내고 가족 간 소통을 중시했다면, 열닷새 뒤인 정월 대보름 행사는 가정 단위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인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다.

 마을 공터나 논 밭두렁에서 행하여졌던 달맞이나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지신밟기, 줄다리기 같은 풍습이 전해졌다. 또 이날에는 ‘부럼’이라는 잣, 날밤, 호두, 은행, 땅콩 등 딱딱한 견과류를 자신의 나이만큼 새벽에 어금니로 깨물어 깨기를 했다. 부스럼 등 몸에 피부질환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 해 귓병을 막아주고 귀를 밝게 만들어 희소식만 듣게 해달라는 의미로 차가운 청주 한 잔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귀밝이술을 이명주, 청이주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정월 대보름 먹방음식은 오곡밥과 나물이다. 찹쌀 조 수수 팥 검은콩 등 다섯가지 이상의 잡곡과 색상은 액운을 쫓아준다고 믿었다.

 나물은 대체로 말려두었다가 불려서 요리한 호박고지 건 가지 버섯 고사리 도라지 시래기 무말랭이 토란대 등이다. 대보름에 묵은 나물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김이나 취잎새에 오곡밥 싸 먹는 것을 ‘복쌈’이라 했다.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다. 까마귀를 위해 약밥이나 보리밥 등을 담 위에 얹어 놓는 까마귀밥을 차리기도 했다.

 기 십여 년 전만 해도 정월 대보름은 큰 명절이었다. 하나 요즘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로 전락했다. 그나마 부럼 깨기, 오곡밥, 나물 먹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때 그 풍속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