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의 기상과 오천 군사 목을 축이다
“물은 기암절벽 깃대에 부딪쳐 더욱 거세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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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의 기상과 오천 군사 목을 축이다
“물은 기암절벽 깃대에 부딪쳐 더욱 거세게 흐른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4.02.08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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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속리산 천왕봉 금강을 만들다

글 싣는 순서
1. 하늘아래 첫동네 신선을 만들다. 
2. 물은 흘러 속리구곡이라 부른다.
3. 동학농민군의 처절한 외침을 듣다. 
4. 고봉 김정선생, 이상정치를 키우다
5. 깃대의 기상과 오천 군사 목을 축이다.
6. 절세의 기재 최수성의 마을 원정리.
7. 흘러간 물은 다시 청산에 잠기다.
8. 비단의 금강, 백제 문화를 만들다.

 작은 개울이든 큰 강줄기는 그 시작이 있으며 산을 넘지 못하고 아래로 흐른다. 속리산 천왕봉은 옛 고서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속리(俗離) 삼파수(三波水)라 불리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은 아래로 흘러 한강, 낙동강, 그리고 금강으로 흘러 세갈래로 흐른다고 전하고 있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작은 하천이 모여 우리의 삶의 터전을 만들고 다시 아래로 흐른다. 
보은은 지정학적으로 백두대간중 한남금북정맥을 배산을 형성하고 있어 비단처럼 펼쳐진 금강의 발원지 마을을 따라 삶의 터전속에 묻어 있는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기대리 앞 보청천.
마로면 기대리 앞 보청천 물이 한겨울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공민왕의 오천명의 군사를 만나 오그네마을이 되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이제 넓은 들판을 만나 인간의 삶속에 깊숙이 파고든다. 인간의 삶속에 파고든 삼가천은 이제 보은읍을 지난 보청천가 합수되면서 제법 큰 강줄기를 형성한다. 거센 물줄기는 거센 바위와 만난 곳 그 곳이 바로 기대리마을이다. 
기대리는 본래 보은군의 탄부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모양이 키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깃대 또는 짓대, 기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대리라 하여 마로면에 편입되어 면의 중앙이라서 면사무소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 기대리 마을 앞으로 보청천이 바로 금강의 본류로 흐르고 있어 산수가 수려하여 여름에는 피서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기대리는 예전엔 160여호나 될 정도로 무척 번창한 시절도 있었지만 다른 마을과 같이 이농현상으로 그 규모가 작아졌는데 군내에서 읍소재지나 면소재지를 제외한 단일 마을로는 그래도 큰 마을에 속했다고 한다. 지금도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삼가천과 적암천이 합류한 보청천이 마을 앞을 지나는데 수량이 많은데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여름철 피서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천을 따라 마을 앞에는 수령이 4백∼5백년된 느티나무가 4그루가 있어 주민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주민의 휴식공간이 되어 왔다. 
탄부면과 경계를 이루는 운무봉(해발 450m)은 마을을 굽어보며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산중턱에 청동을 캐는 광산이 있어 많은 주민들이 종사했으며 70년대 초까지 이어져 왔다.
기대리에는 이름 있는 골짜기와 고개도 많다. 보청천 옆에 우뚝 솟은 벼랑 위로 작은 길이 있다. 옛날 어느 신부가 가마를 타고 이 길을 지나가던 중 가마를 메고 가는 하인들이 이곳 경치에 매혹되어 가마를 벼랑 위에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중앙이 부풀어 올라 가마가 벼랑으로 굴러 보청천에 빠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곳을 ‘가마소’ 라 부르고 있다. 
기대리는 해방전에는 대추나무가 많은 고을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마을은 물론 앞 하천 변에 몇 십년 된 대추나무가 줄을 이었고 대추나무가 심겨진 마을의 모습이 대단했었다고 한다. 인근 상주지방에서 대추를 주우러 왔을 정도라니 그 양은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해방 후 서서히 자취를 감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기대리에는 2010년에 귀농.귀촌한 30여세대로 구성된 공동체 마을로 산수가 수려하고 보청천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오천리앞 청정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고 자연과 사람이 교감하는 대안문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기대리 선애빌마을이라는 공동체 마을이 생겨 외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선애빌 마을의 물 건너에는 작은 내가 있으므로 ‘오그내’ 또는 ‘오천’ 이라 불리는 ‘오천리’ 마을이 있다.
고려 공민왕이 관기리에 머무르다 이곳을 지나 지금의 원남으로 가셨다고 하는데서 지명이 유래된 대왕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대왕산은 다른 기록에는 어느 시대의 왕인지는 모르지만 이산에서 대왕이 태어났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오천리의 오그내라는 지명은 공민왕이 지나갔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원래는 어근래(御近來)이던 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오그내로 변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마을에 작은 내(川)가 있으므로 오그내 또는 오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지금의 오천이란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이제 고려 공민왕을 호위하는 오천명의 군사를 만나 오천리마을을 지나 지금의 삼승면 원남리로 행차한 기록을 토대로 오천명의 군사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기대리 뒷산 운무봉.
기대리 뒷산 운무봉.
기대리 느티나무 보호수.
보호수 기대리 느티나무.
기대리 선애빌 마을.
기대리 선애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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