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농촌건설 군민이 행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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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농촌건설 군민이 행복해야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4.02.01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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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보은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고 보은에 살고 있다. 보은이라는 지명이 언제까지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명은 수천년을 거쳐오면서 그때그때 변화되어 왔다. 기록에 의하면 보은의 첫 지명은 신라 지증왕 3년 서기 502년 삼년산군부터 시작한다.
 이후 삼년군, 보령이라 칭하다 조선 태종 16년 서기 1416년 지금의 보은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옛 기록에 지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보은은 예사롭지 않은 지역이다.
지역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그 기준과 정도는 분명 다르다. 예전에는 지역이 발전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도로를 개설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건물과 공장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많아지면 이에따라 지역경제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런 추세로 보면 지역발전의 척도는 높은 건물, 많은 공장, 늘어나는 인구등 다양하고 많은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발전이라는 키워드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분명 사람이 많다고 해서, 높은 건물이 많이 생겨서, 공장이 많다고 해서 과연 지역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시대는 왠지 정답은 아닌 시대를 살고 있다.
대도시로만 국한되는 교통의 편리, 경제활동의 성장등으로 치닫던 지역발전은 아직도 진행되고는 있지만 웬지 생활이나 주거공간으로는 분명 그 한계선을 넘고 있는 듯 하다. 보은이 대도시의 교통, 경제활동을 따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디. 그럼 보은의 지역발전을 위한 키워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보은의 지역발전을 이야기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이 있다면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된 강점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어느 자치단체든 많은 경제활동의 요소와 인구의 증가는 공통된 숙원사업이라면 보은의 기대치는 과연 어느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까?
최근 보은군 11개 읍면을 살펴보면 보은읍으로 집중되는 인구이동으로 인해 면단위 규모가 급속히 축소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균형발전은 뒤로 하더라도 보은군의 균형발전 또한 멀게만 느껴지고 있다. 노령화로 인한 면단위 1개 학교는 분교화 및 폐교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과거 15년전 보은과 지금의 보은은 분명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스포츠메카에 걸맞는 스포츠시설, 말티재 주변 휴양시설 및 유희시설의 변화는 분명 15년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지금의 보은군의 실정으로 본다면 과한 시설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예산낭비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타지역의 변화된 모습에 견주어본다면 그리 많은 변화는 아닌 듯 하다.
이러한 보은의 변화된 모습이 10년후 어떻게 펼쳐질까? 어느 누구도 장담은 못하지만 분명 보은의 10년, 미래는 그리 절망적인 지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접근성이 불편한 교통, 법주사 위주의 단순한 관광, 마땅한 먹거리가 없고, 유흥시설이 없었던 지역에서 이제는 편리한 교통, 다양한 관광시설 및 유희시설을 통해 보은의 주말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 보은군의 슬로건은 “군민이 행복한 도시형 농촌” 이다. 보은은 농촌을 부정할 수 없다. 도시형 농촌의 방향은 군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같은 보은을 만드는 것이 핵심 키워드일적이다. 
지금 보은군의 도시형 농촌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업이 10년후 어떠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변화된 모습을 잘 가꾸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할 수 있는 보은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찾아가는 정책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보은은 이제 교통의 중심, 급성장하는 대도시의 경제활동을 기대하기 보다는 속리산을 중심으로한 지정학적인 중심무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 배경에는 속리산 법주사와 1500년 삼년산성 그리고 130년전 동학농민혁명군의 무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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