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한 ‘학술토론회’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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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한 ‘학술토론회’성료
  • 나기홍 기자
  • 승인 2023.11.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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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예총 주최, 아나키즘 정신을 바탕으로 펼쳐져
보은예총, 학술토론회 발표자, 한국아카니즘 관계자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보은예총, 학술토론회 발표자, 한국아나키즘 관계자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보은예총(회장 오계자)은 지난 24일 보은문화원 시청각실에서 아나키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충청지역 독립운동가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에는 진천군 백곡면 출신인 (사)국민문화연구소 문존 이문창(96) 선생이 참석해 “아나키즘이란 말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며 “보은에서 이런 좋은 학술대회를 열어준다니 가다가 쓰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와야만 했다.”고 토론회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문존선생은 “우리 충청지역은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 우근, 그리고 회관, 우관형제, 백야, 시야 형제, 서상경 일가와 같이 온 집안이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항일투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곳으로 우리나라 그 어떤 지역과도 다르다.”며 “권구현, 조명희, 이성태 등과 같이 문학에서의 항일투쟁 역시 또 다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보은예총 오 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는 패배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려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악담을 말하며 “아베의 고별사가 예언처럼 우리의 현실은 좌우로 갈라져 으르렁거리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직시했다.
 육경애 독립기념관 이사 사회로 시작, 세종지역 향토연구회 이규상 회장이 열사 박열의 일본인 아내이자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가네코후미코의 한국에서의 삶과 사랑 등에 대해 조명을 했다.
 이규상 회장은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생해 어린나이인 9살에 청주시 부용면(현 세중시 부강면)으로 들어온 것이 인연이 되어 아나키스트 단체인 흑도회, 불령사등에서 활동했고 독립운동가인 박열과 옥중에서 결혼 후 항일 투쟁을 하다 사망한 일본의 대표적 아카니스트”라고 그의 일생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이어, 일본에서 찾아온 역사학자 가메다 히로시 선생이 ‘일제 강점기의 한국의 아나키즘과 독립운동’을 주제로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의 확산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식민지화에 대한 투쟁과 일치한다”며 “의열단과 신채호 이회영을 중심으로 결성된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박열이 조직한 불령사, ‘흑기사건’, ‘잔유여냉사간’, 상하이전투의 ‘흑색공포단’,이 모두 한국 아나카즘계의 전투였다”고 독립운동에 미친 커다란 영향을 강조했다.
 김남훈 전 성동문화재단 순회사서는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본 일제의 식민통치와 항일투쟁'을 발표했다.
 김 사서는 “단재 신채호선생은 어릴적 유교와 한학을 공부했고, 1905년 일본 고토슈스이의 저서 등을 통해 아카니즘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사상을 공부했고, 경술국치를 겪은 1910년부터 독립운동으로 남은 일생을 마쳤다”고 말문을 열었다.
게속해, 신채호 선생이 일본의 수탈, 교육, 사회, 문화의 왜곡에 맞서 싸운 과정을 설명하며 ‘5파괴(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애적의 주요기관) 7가살(조선총독 및 고관, 군부수뇌, 대만총독, 매국자, 친일파거두, 적탐, 반민독적 토호열신)를 거론하며 신채호 선생이 추구한 신사회 건설을 위한 구폐습 파괴대상을 소개하며 “아는 것만 보며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창덕 국민문화연구소장은 “충청지역에는 신채호, 류자명, 김좌진, 김종진, 조명희, 가네코후미코등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가 많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며 “그 분들의 특색은 문예활동을 한 운동가가 비교적 다른 지방에 비해 수가 많고 또 가족 모두가 독립운동을 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아나키즘 운동은 조죽이 처한 식민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함께 뚜렸한 민족쥬의 성향을 띄고 있다”며 “그들은 조국의 독립과 독립을 쟁취하고 나서의 아카니즘을 통한 새로운 국가건설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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