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염 송 妖艶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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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 송 妖艶松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3.09.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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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염하다. 볼수록 요염한 몸짓이다.
더군다나 성스러운 사찰의 마당 끄트머리 아닌가. 하지만‘요망한 것!’하고 나무라기는커녕 그녀의 매력에 나도 빠져든다. 장마 중이지만 지난밤 이 여인의 닉네임이 떠올라 마침 잠시 웃비 개인 틈을 타서 찾아왔다.  20여년 만에 찾은 그녀의 애칭이다. 
저만치 가냘픈 듯 다소곳하면서도 당당한 벗이 있는가하면, 몸매가 호리낭창한 여인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그 옆에는 벌름거리며 숨 쉬는 것 같은 갑옷으로 웅숭깊게 위용을 뿜어내는 장수가 든든하게 여인들을 지키고 서있다. 벗들과 숨 교환을 하느라 이산화탄소를 크게 내뱉고 벗들이 발산한 산소를 한껏 들이마셨다. 솔향 버무린 산소가 가슴뿐이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씻어 주니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검은 번뇌까지 쫓아낸 듯 상쾌하다. 
화양동 채운사 마당에서다. 
소나무는 학창시절부터 나의 위안이 되는 벗이다. 어린 것은 엄전하게 어른스럽고, 늙은 소나무는 오히려 위풍당당 젊은 용맹을 풍긴다. 살면서 당당하고 싶을 때나 숨 교환을 하고 싶어지면 가끔 우거진 솔버덩을 찾는다. 
어른들 말씀이 소나무를 두고 영리한 나무라고 하셨다. 산림이 전공분야이신 친정아버지께 여쭈었던 생각이 난다. 예사로이 넘기던 말이지만 문학에 관심을 두면서 의미를 두고 꺼내 보았다. 영리하다는 서너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 종족번식 방법에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남매끼리의 수정은 자손의 형질을 점점 나빠지게 한다는 이치에 맞추어 수꽃의 소포자는 가지의 아랫부분에 붙이고 암꽃의 대포자엽은 새 가지의 꼭대기 부분에서 꽃이 피도록 해서 남매수정을 방비하는 안전 조치가 된 거란다. 소나무는 풍매화니까 아래의 꽃가루를 위로 올려주는 경우는 없잖아.” 하셨다. 듣고 보니 나무의 생물학적 섭리를 사람이 만들어 주지는 못했을 터라 더 신비롭고 기이했다. 
인류 사회에 친인척 혼인을 금하는 이유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식물조차 우수한 종족을 남기려는 노력이 놀랍다. 자손 사랑은 동식물의 본능이라 치더라도 근친 수정의 부작용을 터득하고 방지 하는 지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솔버덩에서 뜻밖에 친정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되고 말았다. 기분전환 하려고 요염한 몸짓의 그녀 곁으로 갔다. 
몸을 비비 꼬며 살진 맨살을 돋보이게 하는 소나무다. 나무 나이로는 백 살도 넘어 보이지만 사람으로 치면 세상맛을 터득한 불혹으로 보인다. 내가 불혹일 때는 그녀에게 무엇이 못마땅해서 비틀고 꼬느냐고 했다. 세상에는 만족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은데 마인드가 가난하면 만족을 찾기 더 힘 든다는 조언을 하며 나 자신을 다스리기도 했다. 
회갑을 넘길 즈음부터는 누굴 유혹하느냐고 짓궂은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 여인을 보여주려고 함께 간 문우에게 무어라 이름 지어 줄까 했더니 선 듯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다가 남과 북이 한 민족이지만 하나가 되지 못하고 꼬여가는 것을 닮았다며 ‘통일 송’이라 명명하고 통일을 기도 하자고 했다. 둥지가 새끼 꼬듯 꼬면서 뻗고 있지만 뿌리는 하나요, 꼭대기도 어우러져 하나가 아닌가, 몸매야 어떻든 하나임엔 틀림이 없다.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엮으며 10년, 20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엊저녁이다. TV 체널을 돌리다가 얼핏 아모르파티 라는 노래를 
스쳐 돌리며 문득 그녀의 닉네임이 생각났다. 대중가요에서 아
모르는 사랑이라 번역하지만 아모르 파인amorous pine 유혹 
소나무 즉 요염한 소나무, ‘요염송妖艶松’이다. 아주 기분 좋은 밤
을 보내고 두말 필요 없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여전히 몸을 꼬면
서 솔향을 버무린 유혹을 한다. 오늘부터 당신의 애칭을 요염송妖艶松이라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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