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원짜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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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원짜리 행복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3.06.08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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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서울 갈 일이 생긴다. 40년 가까이 일하던 데라서 그렇다. 두 번 직장을 옮겼는데, 마지막 직장은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학교였다. 옛날에는 학교 주변이 모두 질퍽질퍽한 논밭이었고, 좀 떨어진 곳에 시커먼 연탄 공장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오래 우이동에 살았으면서도 아는 데가 별로 없다.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으므로 시청역 인근과 이문동 휘경역뿐이다. 산수리 우거에서 휘경역까지 왕복 10시간 가까이 걸린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시내버스를 탈 수 있고, 한 시간을 가야 대전역이다. 어쩌다가 예매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당일 구매한다. 늘 무궁화를 타는데, 자리도 넓고 요금도 싸서다. 서울역까지 두 시간 걸린다. KTX를 타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전철역이다. 1호선 청량리역을 지나 두 번째가 휘경역이다. 정년퇴직하고 5년간을 그렇게 다니면서 한 강좌 강의를 했다. 
   퇴직하고 몇 년간은 재직 시와 마찬가지로 몇몇 군데에서 강연 초청을 받고, 기업에서 자문역으로 불러 주더니 그 횟수가 점차로 줄어들었다. 그 대신 옛날에 수시로 있었던 축하금 보낼 일이 조의금 보내는 일로 바뀌었다. 재직 중 많은 동료와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부모님 멀리 떠나시는 길을 편히 모셨고, 세 자식 시집장가보내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안식구는 내가 교직에만 집중하여 충실하도록 모든 어려움을 끌어안고 온몸과 온 마음으로 희생하였다. 가정일과 경제문제까지도 몽땅 안식구에게 떠맡겼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낡은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 놓은 기록을 들춰 보면서 혹시라도 마음 전할 일이 빠진 것이 없나를 종종 살피게 되었다. 이런 일조차 아내의 기억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보은 산골에 칩거한다는 구실로 현직에 있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대타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꼭 가야 할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코로나도 끝나지 않았나.
   언제부턴가 안식구는 새벽 첫 버스 타는 것과 막차로 귀가하는 당일치기 서울행을 말리기 시작했다. 나이 먹어서 위험하다는 이유인데, 아마도 자식들의 성화 때문일 것이다. 요 며칠 전 일만 해도 그랬다. 외국에 거주하는 어려운 선배 한 분이 ‘나 좀 보세’ 하신 것이다. 이른 저녁 모실 계획을 잡았다. 낮에는 벌써 몇 번이고 얼굴 한번 보자던 고교 동창 두 명과 점심 약속을 했다. 주말이라 혹시나 해서 10시 34분에 출발하는 무궁화를 예매했다. 서울역에 12시 반, 광화문 교보문고에 잠시 들리고, 종각 SC제일은행에서 분실통장 재발급받고, 부지런히 걸어가서 종로 3가 송해길 입구 벤치에 앉아있을 두 친구를 만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잡았다. 아침을 먹고 안식구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대전역에 내려 주고, 한방병원에 침 맞으러 간다고 했다. 시내버스로 대전역까지 1시간가량 걸리므로, 안식구 차로는 40분 정도면 되겠구나 했는데 그날따라 차도 막히고 조금 늦게 출발하기도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식구를 돌아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뛰었는데, 기차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불운한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무궁화를 무르고 오랜만에 KTX 표를 샀다. 시간이 좀 남아서 성심당 빵집으로 내려가 커피를 한잔 사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점심 식사 후 커피도 한잔 씩 살 요량으로 현금 인출기 앞에 섰다. 카드를 넣었는데, 갑자기 기계 작동이 멈추었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카드가 나오지 않아 쩔쩔매게 되었다. 뒤에 섰던 젊은이가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고장신고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서울역에서 9시 KTX로 돌아온다고 하자, 안내양이 밤 10시 정각에 인출기 앞으로 기사를 보내겠다고 했다. ‘됐다’ 싶어서 플랫홈으로 뛰었다. 입도 대지 않은 성심당 커피는 통째로 휴지통 안에 내려놓았다. 두 번째 기차도 육중한 출입문을 닫고 있었다. 세 번째 티켓으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곧장 송해길로 향했다. 선배와의 저녁 회동이 조금 일찍 끝났다. 고장신고 안내양에게 10시 약속을 9시로 정정했다. 집이 보은인데 9시 20분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자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데 기사는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다. 20분도 더 지나서 나타났다. 이런저런 긴 변명을 해대는 양쪽에 큰소리로 야단을 치다가 ‘가세요,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내가 먼저 사과했다. 10시 10분 막차를 탔다. 오늘도 내가 마지막 승객이었다. 아침에 안식구가 5천 원을 따로 주면서 그랬다. 또 혼자 타고 오시게 되면, 기사님에게 커피값 하시라고 하세요. 그렇게 했다. 하루종일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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