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근본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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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근본은 믿음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3.03.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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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피고 있다. 하나둘 땅을 헤집고 나오는 귀요미들에게 꽃샘추위의 이불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치우지 않고 둔 담 밑 낙엽을 걷어내야겠다. 혹여 성급하게 올라 온 새싹 다칠세라 조심스레 걷어내다가 깜짝 놀랐다. 언제 봄이 이렇게나 피었지? 잎이 올라온 것도 모르고 있던 수선화가 글쎄 터질 듯 말 듯 노랗게 주둥이를 내민다. 
마을 주변의 두엄냄새에 봄을 준비 하는구나 싶었지 이렇게 꽃을 피울 정도까지 봄이 외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2월을 보내고 3월도 벌써 두 번째 토요일이다. 여기저기 단체들이 한해를 시작하는 행사들이 거의 끝난 것 같다. 다음 달에 있을 보은예술제 준비에 마음이 바쁘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계절에 둔해졌구나, 한심한 생각도 살짝 스쳤다. 수선화에 놀라서 뒤뜰로 가니 옹기종기 모인 동강할미도 이미 빼죽이 봉요리가 벌어지고 있고 알리움의 새잎이 제법 자란 상태다. 
매일 거실 소파에서 창밖 라일락이나 백매 홍매의 가지에 매달린 꽃눈만 잠시, 잠시 보다가 땅이 피어올린 봄을 몰랐던 것이다. 예전엔 아무리 바빠도 설레며 봄을 챙겼는데 세월 탓이 아니라 느슨해진 나를 탓하며 소파 깊숙이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을 떼 휴대폰이 진저리를 치며 온 몸을 흔든다. 반가운 이름이 뜬다. 덕분에 무거워 질 뻔했던 기분이 활짝 개였다.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하는 벗이다. 참 오랜만이다. 부부가 오늘 속리산에 온단다. 하도 반갑고 좋아서 설레기까지 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믿음으로 지낸지가 아마 20여 년은 되었지 싶다. 다른 벗들에게 종종 듣는 안부로 여전히 유난스럽지 않지만 은근히 도타운 정이 변치 않는 부부라고 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변치 않을 수 있는 믿음을 단단하게 굳힌 게기가 신혼 때 있었다.
정확하게 53년 전 겨울 방학이 끝난 어느 날 밤에 뜬금없이 그 친구가 내 자취방엘 왔다. 바로 눈치 채고 저녁밥부터 먹이며 새신랑 안부를 물었다. “너만 믿고 선택했는데 무슨 남자가 배려도 없고 매너도 없어,” 오작교 역할을 한 죄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 아닌데 무슨 오해일까 싶어서 계속 듣다가 웃음이 터졌다. 알고 보니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게 아니고 남편이 가볍게 생각하고 던진 농담이 이 친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게다. 
스물네 살 신부에게 “위에 한 근 아래 한 근” 이라며 두 근 아줌마라고 불렀고 두말할 여지도 없이 그냥 나와 버렸단다. 여고시절 두꺼운 입술 때문에 기를 못 폈고 고민도 많이 했던 친구다. 오는 내내 울었는지 눈이 벌겋다. 휴대폰도 없고 자취방에 전화가 있을 리도 없으니 새신랑이 밤새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학교로 전화가 왔다. 새신랑 하는 말이  
“엄마가 귀주 처음 인사드린 날 입술이 도톰해서 입은 무겁겠고 재물복은 있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나는 복덩이 입술이라는 이미지라 좋아할 줄 알았어요,” 자랑스런 입술이라 생각했다는 그분의 말을 점심시간에 전했다. 그 말 한마디에 친구의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계면쩍어 하면서 주섬주섬 갈 준비를 했다. 
부부는 서로를 몰랐다는 미안함과 믿음이 부족했다는 반성으로 평생 디딤돌을 굳힌 사건이 된 것이다. 가출사건 후 무조건 믿는 습성이 몸에 배어서 부부싸움을 모르고 반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두 분의 탄탄한 믿음을 내가 부러워한다. 부부사이는 사랑보다 먼저 믿음이다. 그때 스물네 살 신부기 지금 이른 일곱이다. 
오늘 조카 결혼식 끝나고 폐백실에서 신랑신부의 절을 받고 덕담 한마디 하라는 청에 1초도 망설임 없이 진심을 담았다. “지금까지는 둘이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부터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 믿음이 깨지면 끝장이니 서로 믿는 마음으로 살기 바란다.” 고했다. 사람과 사람 관계는 믿음이 근본이다. 믿음 없는 사랑은 아무리 뜨거워도 멀지 않아 식는다. 믿음을 디딤돌로 이룬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만일 그 때 친구도 남편의 인품을 믿고 있었다면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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