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밭에 쑥
상태바
삼밭에 쑥
  • 오계자(보은예총 회장)
  • 승인 2023.03.02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처럼 광역시 대전에서 점심과 수다를 친구와 함께하고 등달아 백화점까지 따라갔다. 저만치서 움직이는 한 여인에 시선이 꽂힌 나는 발걸음마저 멈췄다. 세련된 우아함이랄까 우아한 세련미랄까. 억지로 꾸미지 않은 듯 단정하지만 검소하다고만 할 수 없이 고급스럽다. 
“나는 있잖아, 예쁜 얼굴보다 저렇게 풍기는 이미지를 더 높이 평가해. 세련미, 교양미, 건강미를 다 갖춘 저 여인.” 그랬더니 친구도 뉘댁 마님인지 참 우아하다면서 얼른 가자고 나를 잡아당긴다. 막 그 여인 옆을 지나는데 목소리도 둬 음은 낮춰서 “언니!” 하면서 왼쪽 팔을 살짝 건드린다. 하지만 생소한 것 같아서 나말이냐고 손으로 나를 가르키니까  “언니 나요 2구에 살던…”  
그는 40여 년 전 옆 동네 살던 말괄량이에 욕쟁이며 야생마 같던 아가씨. 시내서 아는 척하면 창피해서 주위 눈치 살피던 아가씨였다. 오늘은 차 한 잔 하자는데 나 이렇게 우아한 여인과 아는 사이야! 자랑스럽게 주위를 살피면서 움직였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솔직하게 물었다.
“까마귀가 백로 댁으로 시집가니 흰색은 못 되어도 회색은 되네요.” 한다.
“너야말로 삼밭에 쑥이구나.” 하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땅을 기어 옆으로 번지기도 하고 서로 엉기며 자라는 쑥도 올곧게 자라는 삼밭에 심으면 따라서 곧게 자란다는 뜻의 속담이다. 그 여인도 장꾼들이 모여 사는 환경에서 선비 댁으로 시집가더니 특별교육을 받지도 않았으며 물론 성형도 없었지만 외모는 물론이요 교양이 밴 품위와 사고思考까지 딴 사람이 되었다. 
“나 옛날에 언니 험담 많이 했어요. 고상한 척 교양 있는 척 한다고요. 심지어는 저렇게 가식으로 살자면 얼마나 피곤할까 했지요.” 계면쩍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울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 했고 시어머니께 솔직하게 다 말했어요, 말이 여고 졸업이지 제가 무식하고 버르장머리가 없으니 잘 지도해 주시유.” 그랬더니 알고 있다는 어른들 대답에 만감이 교차했단다. 문제는 실수를 해도 한마디 잔소리 없이 토닥토닥 등을 다독여주는 시머머니 미소가 소름 돋을 만큼 가식적으로 보이고 며느리를 대놓고 포기한 건줄 알고 섭섭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다듬어지고 길들이는데 중요한 것은 환경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노력을 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더란다. 가족들의 차분한 움직임과 조곤조곤 소통하는 일상에 저절로 닮아가더란다. 한가한 낮 시간에 어머님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찻잔과 책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으시면 온 몸이 뒤틀려도 참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는 것이었단다. 처음 1년 정도는 속에 천불났는데 신기하게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언니 가정교육이라는 거 바로 그거였어. 보고 듣고 느끼는 거.” 게다가 밤이면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하면서 손을 꼭 잡아주는 남편이 있는데 어떻게 노력을 안 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내내 나는 참으로 부러웠다. “이 말괄량이 아가씨 어디에 그런 복이 들었을까?” 하면서 빤히 보았다.  
자녀들에게 영어, 수학 심으려고 고액 과외 지도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지만 가정교육 생활환경을 위해서 삼밭 조성하며 키우려고 투자하는 부모는 볼 수 없다. 
내가 젊을 시절 짧은 기간이지만 아들과 같은 중학생인 시댁 조카를 데리고 있었다. 그때 저녁마다 거실에 큰 상을 펴놓고 책을 들고 앉으면 제일 먼저 딸이 옆자리를 차지하고 곧바로 아들이 한방 쓰는 친척과 같이 앞자리에 앉아 숙제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그 결과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조카의 성적이 한 학기 동안 평균점수가 11점이 올랐다는 것이다. 평균점수가 그 정도 올랐으니 부모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조카에게 공부하라는 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엄마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돈 들어가는 과외만 집중하지 말고 온 가족이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 조성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