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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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등록금
  • 김옥란 
  • 승인 2023.02.0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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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은 물 건너간 일인가! 부녀는 망연자실 서 있었다. 산장을 위한 대출빚은 거의 갚았지만, 아직 15만 원이 남아있으며, 1원이라도 대출금이 남아있으면 학자금 융자는 안 된다고 조금 전 농협 창구직원이 아버지한테 말했기 때문이었다. 
농어촌 자녀 학자금 융자 제도를 이용해서 농협에서 대학 첫 등록금을 빌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허공을 응시하며 하염없이 서 있는 우리 부녀에게 젊은 농협 창구직원은 다시 물었다. “등록금을 언제까지 어디다 냅니까?” 
나는 건조하게 답했다. “내일 오전까지 서울 청량리 상업은행이요.” 그 직원은 기가 막혔다. 지금은 금요일 오후 아닌가! 내일은 토요일이다. 아버지는 우두커니 서 있으셨다. ‘여상 가서 은행에 취직하라고 어릴 때부터 일렀거늘. 이 딸아이가 오늘 애비 맘을 후벼파는군’ 생각하는 중이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막상 내가 서울의 대학에 합격하자 싫어하지 않으셨다. 속리산 마을에서 기념품 사업에 실패하여 궁여지책으로 두메산골 움막으로 올라가셨고, 산장을 짓고 살아내시느라 금쪽같은 오빠들을 대학에 못 보낸 아버지였다. 그 일이 한(恨)스러우셨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태어나서 엄마 젖도 못 먹고 자란 다섯째 딸이 자식 6남매 중 최초로 대학에 합격했을 때 몹시도 기뻐하셨다. (무녀리 같은 이 딸의 대학 학비 때문에 앞으로 부모님과 오빠들과 언니가 얼마나 고생할까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런데 첫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해야 할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농협 창구직원이 구원투수가 되어 아버지를 불렀다. “아저씨, 저희가 등록금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 직원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아저씨, 제가 며칠 전에 월급 탄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 우리 직원들의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놀라서 질문했다. “월급 탄 것을 빌려주시겠다고? 그럼 자네는?” 그 창구직원이 대답했다. “저는 저번 달에 월급 탄 것이 좀 남아있어서 괜찮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그는 분주하게 동료 직원들과 내 등록금에 관해 의논하더니 얼마 후 “아저씨, 등록금 마련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했다. 그가 친절하게 웃으며 아버지한테 다시 말했다. “이 돈은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산장에 가면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늘 잘해주셨잖아요. 내일 오전까지면 지금 서둘러 서울 가셔야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 첫 등록금 50만원을 빌려주신 농협 창구 직원분과 그 동료분들도 나처럼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실까? 부모, 형제, 이웃들께 받은 한량없는 은혜를 나는 갚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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