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윤사혁 선정비 철거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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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윤사혁 선정비 철거시켜야”
  • 김인호 기자
  • 승인 2022.11.1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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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 사전에 수록된 반민족행위자
사진 왼쪽부터 현감 송익흠, 군수 윤사혁, 현감 권욱, 현감 윤경룡. 비석에 낙서가 가득하다.
사진 왼쪽부터 현감 송익흠, 군수 윤사혁, 현감 권욱, 현감 윤경룡. 비석에 낙서가 가득하다.

보은읍의 길목 춘수골 마을 삼거리 산 모퉁이에 계단은 없으나 흙을 복 돋아 두고 네모로 다듬어진 돌로 땅을 정리하고 정돈돼 있는 곳에 4개의 비석이 서 있다. 
조선시대 현감인 3명 선정비(불망비)와 함께 보은군수를 지냈던 윤사혁 선정비다. 비석에 현감들은 권욱(權煜, 1658년∼1717년), 윤경룡(尹敬龍, 1686년∼1744년), 송익흠(宋益欽, 1708년∼1757년)으로 “현감권공욱청간선정비(縣監權公煜淸簡善政碑)”, “현감윤후경룡선정비(縣監尹侯敬龍善政碑)”, “현감송공익흠천고불망비(縣監宋公益欽千古不忘碑)”라고 각각 새겨져 있다.
군수 1명은 윤사혁(尹師赫, 일본식 이름: 平川博敏, 1887년 ~ ?)으로 비신엔 “군수윤후사혁선정비(郡守尹侯師赫善政碑)”란 내용이 새겨져 있다.
동국대 사학과 출신인 김병서 출향인에 따르면 윤사혁(尹師赫, 일본식 이름: 平川博敏, 1887년 ~ ?)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 11월부터 1940년 9월까지 보은군수를 지낸 사람으로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 사전에 수록된 반민족행위자다.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발행된 책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제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 4,389명의 친일 행위와 해방 전후의 행적을 수록한 사전이다.
선정비 중 가장 높고 멋들어진 모습(지붕모양인 가첨석을 개석으로 만들고 작지 않은 대석까지 만들어 놓았다)을 하고 있다. 비신의 왼쪽 면 일부가 뭉게져 있는데 아마도 누군가 일부 글자를 지운 것으로 보인다.
김병서 출향인은 “친일행위자 선정비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일제 강점기 잔재를 온전하게 깨끗이 씻어 내지 못한 부끄러운 일”이라며 “친일파 군수 선정비는 반드시 철거해야만 한다. 그것도 보은군민의 힘으로”라고 얘기한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내용
윤사혁 尹師赫 平川博敏, 1887년 ~ ?

1887년 6월 18일 태어났다. 충청북도 출신이다. 경성 관립 공업전습소를 졸업했다. 1913년 11월 충청북도 고원(雇員)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1917년 판임관견습시험에 합격했으며, 1918년 충청북도 보은군 서기에 임명되었다. 1921년부터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보은군 속으로 바뀌었다. 이어 1926년 10월부터 충청북도 진천군 속, 1929년 7월 음성군 속, 1932년 5월 청주군 속을 차례로 지냈다. 1932년 11월 음성군 속으로 다시 옮겨 서무주임을 맡았고, 1934년 5월부터 내무계 주임을, 1936년에슨 경성전매지국 충주출장소 속을 겸했다. 1932년 10월 조선쇼와(昭和)5년국세조사기념장을, 1935년 10월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받았다.
1936년 11월 군수로 승진해 보은군수로 재직하다가 1940년 9월 퇴직했다. 보은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공출, 여론 환기와 국방사상 보급, 생산확충 자원 개발, 전사상자(戰死傷者) 위문과 유가족 후원, 국방헌금가 애국기 헌납자금 모금 등 전시(戰時)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퇴직 후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장을 맡았고, 1941년 12월부터 1943년까지 면장으로서 주임관 대우를 받았다. 면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1년 만주구긍로 이민을 알선,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된 충북이민협회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1943년 4월 청주군의 상당(上黨)금융조합 감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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