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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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맹정음
  • 최동철
  • 승인 2022.11.0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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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는 소리글자인 한글 훈민정음과 손끝으로 읽는 점자 훈맹정음이 있다. 누구나 알 듯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허나 또 하나의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한 이가 송암 박두성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세종임금이 재위 중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도 아는 이가 적다. 밤늦도록 한글 창제 작업 중 안질에 걸려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시력을 잃었다. 이로 인해 정사를 돌볼 수 없다며 보위에서 물러나려했고 신하들이 울며 만류했다고 세종실록은 전한다.

 특히 몸소 겪는 시각장애의 불편에서 비롯됨인지, 시각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두었다. 세종 18년(1435년)에는 왕실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시각장애인 지화에게 종 3품 벼슬을 하사했다. 시각장애인의 점복교육과 회합장소였던 명통사에 쌀과 콩을 지원한 기록도 있다.

 각설하고, 시각장애인의 한글인 훈맹정음의 탄생비화도 살펴보면 훈민정음 못지않게 좌절과 시련을 겪었음을 알게 된다. 국립한글박물관 영상 등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6년11월4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가갸날’이라는 조촐한 기념잔치가 열렸다.

 바로 또 하나의 우리글, 시각장애인의 한글이라고도 불리는 송암 선생의 6점자 훈맹정음이 탄생한 날이다. 하지만 굳이 사실을 따져보면 최초의 한글점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미국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 만들었다.

 이 4점식의 점자는 우리나라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일제의 패권다툼이었던 청일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896년 평양에서 만들어졌고 ‘평양점자’로 불린다. 다만 외국인이 만든 탓에 평양점자는 첫소리와 받침글자가 헷갈린다는 단점이 있다.

 송암은 원래 보통학교 교사였다. 그러던 중 조선초기부터 서민들의 질병치료를 관장해왔던 서울 제생원이 1913년에 맹아부를 운영했다. 전국에서 시각장애와 언어장애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제생원에서는 송암선생에게 교사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장애인들이 제생원 맹아부에서 해부학과 안마 등 수업을 한 뒤 졸업하면 안마사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헌데 모든 과정이 일본어로 배워야 했다. 통번역하며 가르치던 송암은 학생들이 힘들어하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에 송암은 총독부의 눈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한글 점자 개발에 착수했다. 12개 안을 모은 뒤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 등 힘든 작업을 밤에만 진행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글 표기방식에 맞는 초성, 중성, 종성을 모아쓰는 6점식의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했고 발표하게 됐다.

 그날 11월4일을 작년에 비로소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내일이 바로 제96돌 점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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