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관문제 매듭 못져 제일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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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문제 매듭 못져 제일 아쉬워요"
  • 송진선
  • 승인 200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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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회장(18일 퇴임 군 새마을 부녀회)
임기를 잘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 후의 모습에 견주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대통령 뿐이랴.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장에 올랐을 때 그 직을 성실히 수행해 떠날때가 됐을 때 모두가 아쉬워서 붙잡을 정도가 된다면 그 정도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18년동안 새마을 조직에 몸담아 오다 18일 일선에서 물러나 앞으로는 후원자의 입장에 서야 하는 군 새마을 부녀회 이화(58, 탄부 하장) 회장. 그도 그 축에 않을까. 그동안 많은 회원들이 도와주고 주위에서 성원을 보내줘 대과없이 회장직을 수행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마을 이름을 문패로 달기위해 온 정성을 쏟았던 회관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제일 아쉽다고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체 회관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로부터 십시일반 성금을 모금하고 면마다 200만원씩 분담해 차질없이 모금하는 등 번듯한 회관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살림 형편 뻔한데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정작 아무 것도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후임자들이 잘 매듭져서 새마을정신이 살아있는 새마을 가족들의 사랑방이 되는 회관이 건립되길 희망했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인 85년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밖에 모르던 당시 마을 부녀회의 총무에 이화 회장이 추천되면서 새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고 회원간 융화와 사업도 합리적으로 전개하는 등 지도자적 기능 수행이 뛰어나자 곧바로 마을 부녀회 회장에 추천됐고 1년 뒤에는 그런 그의 통솔력으로 면 회장에 오르는 등 회원들이 거는 신뢰가 대단했다.

88년부터는 96년까지 군 부녀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97년 처음 군 부녀회장에 선출돼 2002년까지 6년간 회장직을 수행해왔다. 자녀나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등 살림 밖에 몰랐던 그녀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조직을 이끄는, 그것도 선봉장이 되어 새마을 조직을 단합시켜 지역 봉사단체로 우뚝서게 한 공이 크다.

폐 식용유를 이용해 재생 비누를 만들어 팔고 고철 및 헌 옷 등을 팔아 모은 기금으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도와주고 부녀회 공동재산인 논을 경작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도와 그들에게 더불어 사는 정을 느끼게 해주는 등 생활 속에 녹아있는 봉사를 실천했다. 또 여름 행락철 속리산에서 쓰레기 되가져 오기 운동을 전개하고 구급약을 제공하고 미아 보호소를 운영해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관광지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역할도 했다.

98년 보은 수해시에는 본인도 수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원봉사에 앞장서 과로로 쓰러져 입원을 하는 등 진정한 봉사자의 모습도 보여줬던 이화 회장은 그런 봉사자로서의 삶이 지금은 정신적 자산이 되었다고 말했다. 마로면 오천리 출신으로 세중초등학교와 보덕중학교를 졸업했으며 95년 새마을 유공으로 내무부 장관상을, 2000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이화 회장은 그동안 외조를 아끼지 않은 든든한 후원자 남편 유재문씨와의 사이에 6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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