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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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문화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2.09.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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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서나 인력거(人力車)를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 씨클로라고 하고 태국에서는 삼로라고 하며, 인도네시아에서는 베짝(becak)이라고 한다. 씨클로는 운전자가 뒤에 있고, 삼로는 앞에 있다. 베짝은 뒤에도 있고 앞이나 옆에 있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인력거는 사람이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데, 인도네시아에는 사람 대신 오토바이 엔진을 단 베짝도 있다. 지난 90년대까지만 해도 동남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탈 것은 단연 인력거였다. 요즘은 인력거가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이고 요금도 택시보다 꽤 비싸졌다.
   그래도 인력거를 타 보는 관광객들은 끊이지 않고 눈에 띈다. 복잡한 도심의 속살을 헤집고 다니며 천천히 사람 구경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인력거에는 요금 계산기가 달려 있지 않아서 타기 전에 요금을 흥정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인력거꾼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승객과 베짝꾼 사이에 벌어지는 요금 실랑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나라 대학캠퍼스는 상당히 넓고 잎 넓은 수목으로 꽉 차 있지만, 한낮이면 키가 큰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쩔쩔 끓는다. 그래서 가까운 강의동으로 이동하는 데도 더러는 베짝을 타게 된다. 그늘 밑에서 졸고 있는 베짝꾼을 깨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싼 요금을 부른다.  
   베짝꾼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이들은 아이들이 서너 명 딸린 가장으로 일거리를 찾아서 무작정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빌린 베짝 사용료, 나물 반찬 한두 가지에 밥 한 덩어리와 여러 차례 우려낸 차 한잔으로 때우는 점심값, 내일 하루 가족들이 먹을 1킬로짜리 묵은쌀 한 봉지. 이 세 가지가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최저임금과 크게 차이나지 않은 오늘치 이들의 목표다. 베짝 요금을 깎는 것은 그래서 을(乙)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베짝꾼들의 하루 벌이를 ‘나몰라라’하는 갑(甲)질이 될 수 있다.  
   모시기 어려운 선배님을 쟈카르타(인도네시아의 수도)의 작은 세미나에 초청했다. 이 선배는 호텔을 떠나면서 하루종일 곧게 서서 손님을 맞고 배웅하는 서너 명 도어맨들에게 팁을 나누어 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2만 루피아(1700원)짜리였던 것 같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들은 뜻밖의 선의에 감사를 표하고 선배도 같은 각도로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하였다. 그 이후로 필자는 베짝 요금을 잘못 들은 것처럼 되묻지 않게 되었고, 비싼 숙박료를 지불한 룸을 떠날 때도 깨끗한 지폐로 약소한 팁을 남기게 되었다. 
   팁(Tip) 문화는 유럽 발(發)이다. 원래는 ‘급행료’라는 의미가 붙어 있었으나 점차 ‘봉사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모든 서비스 영역에서 서비스 수혜자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청구 금액의 10%에서 15% 정도를 사례하는 것인데, 현금으로 주지 않고 팁을 포함해서 결제하는 방식이다. 동남아의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미국이나 유럽국가의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에는 오늘날까지도 팁 문화가 오롯이 남아 있다. 
   350년 동안 네덜란드가 통치했던 인도네시아는 많은 인구, 너른 국토,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이 나라의 팁 문화는 특징적이다. 팁이 개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지 않고 일정기간 한 군데 모았다가 똑같이 분배한다는 것이다. 홀 서비스 여종업원, 주방 조리사와 보조 인력, 경비와 청소용역까지. 더 받는 사람도 없고 열외자도 없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길거리 카페는 그래서 좋은 직장에 속한다.    
  팁 문화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S전자 부회장님이 부산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한우 전문점이었는데, 식사가 만족했던 모양이었다. 식사 후 부회장님은 서빙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고 묻고, 열 명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1인당 5만 원씩 돌아갈 수 있도록 50만 원을 팁으로 건넸다. 우리 서민들과는 달리 돈 많은 대기업 부회장의 행보였으므로 맛있는 식사 후에 서비스를 제공한 종업원들에게 적당한 팁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다. 팁은 남을 위해서 내 돈을 조금 떼어 내는 것이다. 내 마음을 조금 떼어 내는 배려나 내 시간을 조금 떼어 내는 봉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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