뇨만 레더를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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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만 레더를 기림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2.05.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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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최대 관광지인 발리의 사누르(Sanur) 해변에 발리 하얏트 호텔이 있다. 사누르 지역은 조용한 곳으로 소문이 나서 나이 든 관광객들을 많이 찾는다. 발리의 호텔들은 대개 4층이다. 이곳에서는 신축 건물의 높이가 다 자란 야자나무의 평균 키인 14.8 미터를 넘으면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어떠한 건축물도 신들의 창조물인 야자나무 높이를 넘보지 못한다. 그래서 발리 하얏트 호텔도 4층이다. 당연하게 객실의 천정이 낮다. 일 년 내내 습기가 많이 차는데, 높이가 지면과 거의 일치하는 1층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먼 거리를 날아와서 야간에 체크인하는 관광객들에게 발리 하얏트 호텔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로 뒤척이다 늦게 잠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자지러지는 창밖의 새 소리에 깨어난 아침이 되면, 남국의 태양이 선사하는 눈 부신 햇살 사이로 아름답게 꾸며진 15헥타르 정원이 정말 장관이다. 온갖 색깔로 꽃 피운 연꽃을 담은 작은 연못들이 손에 닿고, 키 큰 야자나무 사이로 초록빛 바다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는 방풍림이 도열해 서 있고, 청설모 비슷한 뚜빠이(tupai)가 가지를 옮겨 다니면서 풋살구 같은 열매를 쉴 새 없이 따 내린다. 
200미터 남짓한 해변 산책로 끝에 호텔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져서 다시 호텔 경내로 들어선 후 3‐4분쯤 걷다 보면 ‘뇨만 레더(Nyoman Reda)를 기리는 작은 터’가 나타난다. 뇨만 레더는 33년을 이 호텔의 정원사로 일했다. 18세의 나이로 호텔 개관과 동시에 근무를 시작하여 퇴직한 직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일생은 모두 이곳에 있는 셈이다. 40이 넘어서부터 방광염을 앓아 온 까닭에 말년에는 용변 보기가 곤욕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고질과 싸워가며 혼신의 열정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남겼다. 뇨만 레더를 기리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발리 하얏트의 모든 종업원들과 호텔 방문객들은 당신이 만든 이 아름다운 정원을 항상 기억할 것입니다.”
   부자 관광객과 가난한 정원사, 인간 세상은 처음부터 불공평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들 부모의 자식들이고,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나는 환경을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나 보니 사우디 왕족인 사람도 있고, 인도의 최하층인 노예 계층보다도 더 천한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어디 인간들뿐이랴. 따듯한 남쪽 나라의 부잣집 정원수로 자리 잡는 나무도 있고, 한파가 몰아치는 긴 겨울 내내 바위산 비탈에 서는 나무도 있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발견되는 향나무도 모두 다른 운명을 가지고 땅 위에 선다. 중세 바다의 실크로드 시대에 같은 무게의 황금과 교환하였던 백단(白檀)도 있고, 조선조 권세가 여인네들의 화류장이 되어 사랑받던 적단(赤檀)도 있고, 고급 목공예 조각품으로 변신하는 고가의 흑단(黑檀)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북미 로키산맥의 2,000미터 고지에는 연중 강풍과 혹한으로 인하여 곧게 서지 못하고 무릎 꿇은 채 군락을 이루고 있는 향나무도 있다. 그러나 목재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는 로키산맥의 향나무도 혜안의 장인을 만나면, 천상(天上)의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으로 만들어진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은 동티모르의 백단이나 중국 운남성의 적단이나 미얀마 북부 산악지대의 흑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악천후를 딛고 무릎을 꿇은 채 끈질기게 생명의 꽃을 피운 로키산맥의 향나무가 최적재(最適材)로 쓰인다는 것이다.
뇨만 레더는 따듯한 가정의 가장으로 신의와 우직함으로 동료들의 신망을 얻었으며, 이에 더하여 그의 성실성과 재능을 높이 산 경영진 두터운 신임 아래 마음껏 일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전 세계에 산재되어 있는 하얏트 호텔 중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범부(凡夫)의 손에 의해서 인간 세상의 일상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뇨만 레더의 타계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했다. 함께 일했던 정원사들이 그를 기리는 작은 기념비를 세워 줄 것을 건의했고, 같은 생각이었던 경영진들이 지체없이 이를 수용하였으므로 뇨만 레더는 그가 평생을 바쳐 일했던 아름다운 정원의 한 모퉁이에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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