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충암(김정)선생 시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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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충암(김정)선생 시비를 만들자
  • 김인호 기자
  • 승인 2022.04.0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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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에 걸쳐 우리지역 출신으로 기묘명현 중 한 분인 충암 김정선생(1486~1521년) 500주기를 맞아 그를 조명하는 기획물을 게재했었다. 특히 충암선생의 시비를 건립하자는 기획물 내용은 뜻있는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20년 10월 15일 ~2021년 1월 14일까지 연재)
기획물의 영향인지 또는 공원 조성 자체 계획에 포함되었던 것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2020년 12월에 보은읍 삼산리에 완공된 삼산공원 내에 충암 김정과 대곡 성운의 시비(?)가 건립되어 일부 주민들의 반향도 있었고 충청북도 내 다른 언론사에서 시비라 소개하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기획물의 영향을 받아 진행된 것이라고 하면 주민의 여론 수렴장인 지역 언론의 글을 정책에 반영한 전향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보는 앞으로도 기사와 기획물을 통해 전했던 사안에 대한 평가와 현황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흉물로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재생시키며 지역출신 인사의 글을 소개한 당국의 뜻과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주변에서 쉽게 접하게 한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시비라 부르기에는 아쉽고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말도 있으나 문화적 자산을 가꾸고 보전해 가는 것이 지역의 문화적 소양을 나타낸다는 시각에서 몇 가지 아쉽고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형식상 시비라 할 수 없다. 분수대로 보이는 조형물 측면에 충암과 대곡 시를 음각(陰刻)한 것은 시비라 부르기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별도의 조형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암 김정 시 비’ 또는 소개한 글에 따라 ‘충암 김정의 忽忽(홀홀)’이라는 목적물 명칭이 없는 점이다.
둘째, 국역본만 기재한 내용상 문제가 있다. 한시(漢詩)로 된 글을 원본 소개와 출처도 기재하지 않고 한글로 된 국역본만 기재하고 출처와 역자(譯者)도 누구인지 소개하지 않고 만든 것은 지적하기에도 민망한 것이다. 충암의 ‘忽忽(홀홀)’이란 한시는 우리글로 된 시를 지은 것이 아니고 운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한시의 5언 율시로 된 것이다. 최소한 한시 원본과 한글 음을 동시에 싣고 한글 의역 글을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충암과 대곡의 글을 함께 소개할 목적이었다면 두 분의 관계도 설명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충암의 사촌형인 김벽의 딸이 대곡성운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어 본다면 또 다른 감흥이 일어날 수 있다. 네포티즘(족벌을 중용하는 정치적 행태)이란 관점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차원에서 부족한 점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본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점에서 삼산공원에 있는 충암과 대곡의 글은 시비라 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충암과 대곡 시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제일의 관광지 중 하나인 제주도 우도의 검멀레 해변가를 배경으로 충암 김정 시비가 건립돼 있다. 귀양 간 제주에서 위리안치(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것)되어 우도를 가보지도 못하고 전해들은 풍경을 읊은 시를 시비로 세웠다고 하니 제주도 사람들의 충암에 대한 흠모의 정이 태를 묻은 우리 지역보다 더 높고 깊은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삼산공원의 부족함을 시작이 반이라고 자조할 수만은 없다. 충암 김정 선생에 대한 선양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가꾸어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역의 관광자원을 발굴해 가는 것이다. 지역의 진정한 주인인 무궁한 후대들을 위한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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