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산성을 따라 금강을 만나는 버드리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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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산성을 따라 금강을 만나는 버드리 고갯길”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2.03.10 0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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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명소길(58)- 한강과 금강을 넘나드는 분수령길
“청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 역참과 관창이 있었던 마을”

모든 길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길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역사의 중요한 이야기도 남긴다. 보은의 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연고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전설이나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길, 그냥 편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길, 자연과 함께 걷고 싶은 숲길, 그 모든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내북면 창리 마을 전경.
내북면 창리 마을 전경.

 

한강으로 흐르는 달천의 물줄기는 내북면 봉황리에서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을 지나 충주시 달래강으로 합류된다.
내북면 봉황리 달천으로 합류되는 내북면의 면소재지인 창리로 발길을 옮겼다. 봉황리는 예부터 ‘새들’ 이라는 지명이 유래되고 있다. 봉황리에 살던 김모씨의 외조부가 봉황리앞 달천에 보를 막아 경작을 히작하면서 봉황리를 새들이라 불리웠고 이와는 반대로 옛날부터 있던 들이라하여 상암리에는 ‘구들’ 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성암리는 이 마을 뒤편에 바위와 벼랑으로 되었는데 매우 영험하고 성스럽다는 의미에서 성암리라 불리워졌다. 밀양 박씨 15대조 대제학 순간공이 청년시절 밀양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중 이 마을에 들러 기암절벽과 바위의 자태가 기묘하여 풍류를 즐기고 떠날 때 이 바위가 성스럽다 하여 성암(聖岩)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예전엔 바위 위에 말발굽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성암리에는 아실기고개로 불리우는 창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예전에 성암리를 떠나는 남정네들을 아낙들이 이 고개에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흐느꼈던 고개로 애절한 마음이 드는 고개였다.
또한 성암리에는 마을어귀에 세우던 장승처럼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성암리의 장승배기는 조선시대 대원군 당시 경주 김씨 가문의 선비가 유생들을 가르치며 마을의 번영을 위해 장승을 세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라 한다.
성암리에서 아실기 고개를 넘으면 내북면의 중심소재지인 창리가 나온다. 내북면은 본래 주성면이라 하여 주성면이라 불리웠는데 창리마을 인근 능선을 따라 금강과 한강의 분수령을 따라 나지막한 산성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주성산성은 창리에 위치한 주성산을 둘러싼 석성으로 둘레는 634m로 삼국시대의 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주성산성이 위치한 창리는 조선시대 관청에서 사용하는 말을 관리하던 역참(驛站)과 조선시대 양곡을 저장하던 창고가 설치되어 있어 창(倉)골이 위치해 있었던 마을이다.
보은에서 청주로 향하는 길중에 가장 고개가 원만하여 삼국시대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지리적인 위치해 주성산성이 필요한 군사시설인 듯 했다. 옛 기록에는 주위가 약 340간에 높이는 약 3척에 폭은 약 5척인데 곳곳이 파괴되어 인근 마을에서는 성재로 불리고 있다.
현재 주성산성은 주성산(360m) 꼭대기에 2개의 봉우리 및 그 능선을 포위하듯 쌓았으며 북서쪽 사면을 이영하여 반달의 형태로 쌓았으며 북사면의 능선이 워난하고 평지도 있으며 성안에는 우물자리도 있으나 능선이 있는 남쪽은 2개 봉우리와 이어진 능선 바로 아래로 성을 쌓았는데 성벽 바로 밑은 표고차가 90m나 되는 지세가 경사 70~85도의 절벽을 이룬 매우 험준한 절벽이어서 고도가 낮은 산성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형을 지니고 있다.
성에 사용한 돌은 편마암으로 지금은 대부분 붕괴되어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망대나 장대등의 건물자리로 추정되는 흔적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 주성산성은 삼국시대의 성으로 인근 미원면 방면의 낭성산성과 구녀산성등 청주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하거나 연락을 위한 목적으로 신라가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북면의 읍소재인 창리와 이 주성산성은 청주에서 보은 사이의 교통의 요충지로 청주로 향하는 지름길로 알려져 있다.   
내북면 창리에서 주성산성의 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화전리와 염둔리를 거쳐 법주리가 나온다. 화전리에서 염둔리에 위치한 한국화약 공장을 지나면 벚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다. 법주리 입구에 도착하면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와 장승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마을 고사를 지내던 곳으로 마을입구에 위치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 법주리는 본래 회인군 동면의 지역이었다가 보은군 회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 2월 내북면으로 행정구역이 편입되었다. 법주리 마을 뒷산은 구룡산이라 불리고 있다. 구룡산 밑 큰 골짜기에 위치한 법주리는 예전부터 버드나무가 많아서 버드리라고 불리웠고 이 법주리에서 회인면 쌍암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버드리고개라고 불리고 있다.  

성암리 구들전경.
성암리 구들전경.
아실기 고개.
아실기 고개.
창리 주성산성 모습.
창리 주성산성 모습.
법주리 장승거리.
법주리 장승거리.
법주리 버드리 고개.
법주리 버드리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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