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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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슴
  • 오계자 (소설가)
  • 승인 2021.0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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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강추위를 맨몸으로 견디고 있지만 어찌 그리 용케도 아는지 얼마 안 가 해토머리부터 나뭇가지들은 여드름이 돋는다. 묵묵히 움을 틔우고 꽃을 피워 충실한 2세를 위한 열매까지 소임을 다하는 나무둥지가 어르신세대의 아버지를 닮았다. 사랑도 아픔도 가슴으로 삭혀야 했던 아버님들은 자식사랑조차 내놓고 표현하지 못하셨다. 요즘 젊은이들이 당연하게 딸 바보 아빠가 되는 추세를 보면 참 보기 좋고 부럽기도 하다. 표현도 못하고 가슴에 묻었던 사랑이 손자들에게 다 쏟아져 이젠 어르신들이 모이시면 손자 자랑뿐이다. 자식 자랑은 팔푼이요 마누라 자랑은 칠푼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사고방식 또한 조선 오백년 양반의 나라 성리학이 낳은 폐단이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 참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노릇인가를 깨달으면서 졸혼이라는 것이 생겼다.
지난해 가을, 십여 년 만에 우연히 어릴 적 어깨동무 부부를 만났다. 나와 동갑인 그 동무는 11년 후배 젊은 아내를 맞이한다고, 당시 깨복쟁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고 부럽다고도 했지만 나는 두 사람 결혼 전, 그에게 다가가서 진지하게 말했다. “영혼도 육체도 많이 힘들 껴, 잘 생각 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그랬던 동무가 결혼 후 몇 년 되지 않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무게를 느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은 신부가 연상인 경우가 좋다고 개인적으로 나는 권한다. 아내가 영혼도 육체도 왕성할 때 이미 남편은 시들고 있는 현상이 생긴다는 걱정 때문이다. 오랜만에 동무를 만났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카페도 못 가고 자판기 커피 들고 대학병원 로비 벤치에 앉았다. 잘 살고 있겠지 싶어 묻는 안부에 동무가 대답 대신 긴 숨이 터진다. 내 눈길은 바로 아내에게로 향했다.
“졸혼 하잡니더.” 무표정으로 영혼 없는 그 말에 많은 것을 짐작했다. 겨우 말문이 열린 동무는 “야야, 나도 사람이다 내 가슴도 상처가 있고 내 가슴도 아플 줄 안다 아이가.” 이제 지쳤나보다. 이뿌다, 이뿌다 해 주니 어리광에 요구만 하는 아내와 자식들은, 한여름 가뭄에도 한겨울 북풍한설도 묵묵히 견디며 가족을 지키는 나무 둥지처럼 아픔도 외로움도 모르는 가장이라는 이름의 보호막일 뿐인 줄 안단다. 
얼마 전 TV화면에서 국민의 아부지 최불암님이 “아빠의 가슴에도 상처가 있다는 걸 자식들은 몰라요.” 하시며 먼 산을 향하시던 그 표정에서 깊은 주름의 골마다 숨어있을 많은 무엇인가를 읽었던 적이 있다. 평생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는 책임감은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기대고 의지하는 쪽에서는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히려 팔구십 대 노인층은 그것이 당연한 임무로 여기고 숙명인양 지켜 왔지만 육칠십 대 남편들은 시대 변화를 봐 버렸다. 억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퇴직하고 돌아오니까 평생 가족을 위해 수고 했다고 고마워하는 빈말 인사조차 없이 하루 1식만 하라며 지천 꾸러기란다. 남은 2식은 알아서 해결이다. 외출이 없는 날은 직접 주방에서 해결한단다.
잘 하다가 왜 갑자기 불만이냐고 물었더니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했다. 
이런 상태로 졸혼을 한다면 누가 더 유익한 삶이 될까, 물론 본인 하기 나름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댁은 안팎이 다 좋단다. 아내는 미혼인 딸과 둘이 알콩달콩 살겠다고 좋아하는 반면 동무는“나도 사람인지라 여생을 자유롭게 해방 된 삶을 살아보고 싶다.” 하더니 만세를 부른다. 어느 쪽이 손해냐, 이익이냐 라는 질문은 필요가 없다. 울근불근 하루하루를 불편하게 사는 것 보다는 자유로운 삶도 괜찮을 것 같다. 없어봐야 비로소 기러워지는 관계가 부부다. 그동안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어려움만 더 많이 부각된 것 같다. 침묵이 사내다운 사내인 줄 알고 살았으니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어찌 일일이 표현하랴. 아내들은 바가지 긁어도 아버지들은 왜 안 되는 것이었을까. 직장에서 곤욕을 치룬 날도 자존심 때문에 가슴에 묻고, 아내의 바가지도 가슴에 묻고, 자식들의 불만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들의 가슴은 바위 덩이일까. “나도 사람이여” 이 말에 많은 한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국민배우 국민의 아부지 최불암님의 말을 되씹어 본다.
“아버지의 가슴에도 상처가 있다는 것 자식들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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