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뱃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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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뱃전에 서서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1.01.0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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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쏭도, 징글벨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떠들썩하던 망년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쥐죽은 듯 조용하게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세상공기가 병균으로 오염되어 혼탁하니 생의 즐거움도 사라지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걱정을 하는 사람들만 늘어가는 것 같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새해를 맞이했을 것 같다. 정부에서는 회초리를 들고 위에서 고개를 드는 자만 있으면 후려갈기니 숨도 못쉬고 엎드려만 있어야 했다. 모두 다 코로나 몇 번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정부로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해 동안 끊임없이 메스컴에 오르내리던 빨간입술의 카이젤수염 판서대감도 정치 패싸움만 하다가 교도소내 코로나환자의 확산사건으로 결국 어정쩡하게 물러났다. 자기의 “령”(명령)을 거역했다면서 장관의 권한을 총동원해서 전횡을 휘둘렀던 바로 그 여자다. 국회에 가서도 한마디도 지지 않고 사춘기의 불량배 여중생들처럼 악다구리로 싸웠다. 흠이 많은 자기 자식 보호에만 매달리는 현직 공직자의 모습을 보면서, 공직은 왜? 맡았는가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오직 재집권에만 정신이 팔린 여권은 물론, 사분오열된 야권도 집권층을 향해 짖어대기만 함으로써 백성들은 불안하기만 했었다. 결국 공기도, 정치권도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었다.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만 조용히 있으려하나 그것도 잘 안되었다. 너도 나도 핸드폰만 쥐고있으니 오가는 문자 메시지로 손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음악까지 깔아서 크리스마스카드처럼 꾸민 새해 연하장은 멋은 있으나 그저 손가락 한번 까딱해서 보낸 성의 없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비슷하거나 똑 같은 남의 것들이어서 지겹기 까지 했다. 그것을 보낸 사람의 향기와 냄새는 그 어느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너 자신의 말을 듣고 싶어!”하고 문자를 보내고도 싶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직접 전화로, 또 자기의 말로 문자를 찍어 보낸 문화재계 인사들과 친구들, 후배, 제자들이 많았기에 아쉬운 마음보다는 보람이 더했다.

 특히 반가운 소식은 서울의 모 대학교 학생그룹이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만들어 판 이익금 전액을 “한국전통문화진흥원”에 기증하는 고마운 일도 있었다. 학생들은 후원취지에서 “저희는 4년 간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배워왔습니다. 전통 문화는 고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고 멀게만 느껴지던 전통의 것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하고자 순우리말, 전통문양, 오방색, 풍속화 등을 활용한 다이어리를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였습니다. 고유의 멋을 널리 알리고자 진행한 프로젝트였고, 판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이와 관련한 수익금을 한국전통문화진흥원에 기부하고자 합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부디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발굴해내는 곳에 잘 쓰이길 바라겠습니다.”였다. 이 얼마나 장한 젊은이들인가? 우리 진흥원이 문화재청 허가법인이지만 10여년이 넘도록 정부나 군청으로부터 한푼의 지원도 없었다. 그저 자기네 코드가 맞는 패거리와 텃세 지역민들 끼리 예산 나눠먹기에 급급함을 보고는 의욕을 상실했던 터였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학생들 후원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자욱한 매연 속에서 시궁창싸움질 하는 정치권을 비롯한 문화재청, 텃새 군청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오직 나의 갈 길만 묵묵히 가야겠음을 느꼈다. 문화재에 대한 용어도 정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에 육당 최남선선생은 “우리들이 새문화재를 만들기에 바쁨은 물론이다. … 묵은 문화재에 대한 반성과 인식이...” 하고 ‘묵은 문화재’, ‘새 문화재’라는 이상한 말을 남겼지만,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이용하여 새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진흥원이 앞장서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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