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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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세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12.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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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세란, 먼저 자리를 잡은 자가 뒤에 들어온 자에 대하여 특권의식을 가지고 공연히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행동을 말한다. 이는 어떤 지역이나 직장, 또는 조직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반조직사회에서는 물론 학생, 군대, 심지어 교도소 감방에서까지 텃세가 있다.
 자석에서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공연히 싫어지는 마음, 외지인이 들어와서 자기들 먹거리를 축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잘사는 도시인이 들어와서 자기들을 무시하지나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도 있을 것이다.
 거의 많은 지역의 텃세중심은 이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등 촌감투를 쓴 사람들임도 느꼈다.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지역장, 단체장, 공무원들이 민심을 그대로 따라감으로서 점차 ‘텃세골’로 변해가는 것이다.
 내 주위의 어느 지인은 전원생활의 향수에서 시골에 오려는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막겠다고 했다. 제일 어려운 것이 지역감정에 따른 텃세였다고 했다. 정착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외지인 취급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인생의 바닥생활이 몸에 익어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공직생활자들은 정직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점은 없지만 원리원칙을 따지는 꼬장꼬장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성격은 텃세까지 심한 시골에서의 삶은 고통과 후회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텃세는 조직과 개인에게 해독이 된다.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은 대개가 배타적이고 “우리끼리만”하는 마음이 강하다. 따라서 외부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은 구태의연한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그 지역의 발전을 저해하고 정체된 상태로 남아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전통문화 보존에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다. 물론 지금은 각종 매체들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고 있어서 시골사람들도 알고는 있지만 개인의 사고의 변화와 실제생활에서 받아들이는 것과는 상당한 갭이 있다.
 작년에는 동네옆집에 사는 연로한 할머니가 타계하셔서 우리부부가 한동안 울적했었다. 그분은 시골생활이 처음인 우리를 남달리 포근하게 감싸주시고 생활의 지혜도 주신분이셨다. 어느날 아침 아내가 늦잠을 자서 어쩌다 한번있는 아침청소 빗자루부대에 불참했는데 감투쓴 여자의 선창에 따라 새로 들어온 여자가 재빨리 아부하며 날뛰었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가 나서서 “아유 그런 소리하지 마라. 그 아줌마는 매일 아침 혼자 동네 쓰레기를 다 줍고 다녀! 얼마나 깨끗한 여잔지 몰라.”하고 막았다. 사실 아내는 평소에 그랬다. 우리 부부는 그때 우리를 옹호해준 할머니를 절대 잊지 못했다. 어려울 때 말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아내는 여러 번 술회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넘어져서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나중에 듣고 할머니처럼 마음씨 착한 그 아드님을 찾아보았지만 섭섭한 마음이 오래동안 있었다. 지금도 그 할머니의 빈자리가 마음속 한구석에 허전하게 남아있다.
 사람의 성품은 천성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거죽을 뒤집어쓰고 다녀도 겪어보면 들어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밥먹고 살면서 자식 몇 남기고 가는 것은 동물들도 다 하는 짓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아무 남긴 것 없이 그냥 흙속으로 사라진다. 죽고 난후에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인생을 잘 산 사람이다.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것은 오직 책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고마운 마음들뿐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함을 느낀다. 아무것도 아닌 텃세는 모두가 버려야 할 나쁜 풍습이다. 텃세는 어쩌면 무식쟁이 시애미가 불쌍한 며느리 하나를 두고 호령하는 모습과 같다. 그 시애미가 불쌍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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