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에 대한 충암의 생각을 더욱 깊게 엿 볼 수 있는 글들과 함께 살펴보면 “목단(牧丹)”의 멋과 맛이 더 클 것 같다.
忽忽(문득)
忽忽日云暮 / 淒淒時已秋 (홀홀일운모 / 처처시이추)
村墟春杵急 / 原野逆車休 (촌허춘저급 / 원야역거휴)
山暝歸雲斂 / 林深捲鳥投 (산명귀운렴 / 임심권조투)
端居觀物化 / 悟念此生浮 (단거관물화 / 오념차생부)
문득 날이 저무니 / 때는 이미 서늘한 가을이구나
촌마을엔 절구 소리 급하고 / 들판에는 일 수레가 쉬고 있네
산이 저무니 돌아가는 구름이 모여들고 / 수풀이 깊으니 지친 새들이 뛰어드네
단정히 앉아 사물의 변화를 바라보나니 / 이생이 뜬구름 같음을 깨닫는구나 *국역 충암집 상권 31~32쪽
次彦聖兄“赴燕”韻
(언성 형의 “연경에 감”이란 시에 차운하여)
家園懷漢北 / 鞍馬滯遼東 (가원회한북 / 안마체요동)
烟草愁前綠 / 風花客裏紅 (연초수전록 / 풍화객리홍)
乾坤身渺渺 / 時序更匆匆 (건곤신묘묘 / 시서경총총)
休道非吾土 / 人生逆旅中 (휴도비오토 / 인생역려중)
한강 북쪽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 말에 안장을 채우고 요동에 머무르누나
안개 머금은 풀은 근심스런 사람 앞에서 푸르고 / 바람에 나부끼는 꽃은 나그네의 마음속에 붉네
하늘과 땅에서 이 몸은 보잘 것 없으니 / 때는 차례에 맞추어 바삐 흘러가네
이곳이 우리 땅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소 / 인생 자체가 나그네의 길인 것을 *국역 충암집 상권 35쪽
인생을 “덧없다”를 의미하는 부(浮) 또는 “나그네 길”인 역려(逆旅)로 인식한 충암 이였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충절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8.고향과 어머니
來三山道中作(삼산에 오는 길에 지음)
徽雪輕輕落醉顔 / 風吹飛騎到三山 (휘설경경낙취안 / 풍취비기도삼산)
家園遙望依然見 / 門倚斜陽彩翠間 (가원요망의연견 / 문의사양채취간)
흩날리는 눈이 가벼이 취한 얼굴에 떨어지고 / 바람 부는데 말을 나는 듯이 달려 삼산에 이르렀네
고향은 멀리 옛날처럼 보이고 / 문은 지는 해의 푸른 빛깔 사이에 기대어 있구나 *국역 충암집 상권 43~44쪽
삼산은 보은의 옛 지명으로 충암이 고향을 삼산이라 부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고향 오는 길에 지은 글이라는 뜻이다.
눈 내리는 겨울에 취기 오른 얼굴로 말에 올라 고향 가는 길에 나선 정겨운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7언 절구로 이루어진 “次無沃然字韻(차무옥연자운)”이란 10수의 시중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언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를 표현한 1수의 결구에서도 고향을 삼산이라 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家在三山別隔年(가재삼산별격년) 고향은 삼산인데 떠나온 지 벌써 한 해” *국역 충암집 상권 88~89쪽
북실마을로 불리는 충암의 고향 마을은 보은읍 삼산리 방향에서 가려면 바람불이라는 지역을 거쳐 가야 한다.
바람불이 부근을 풍취(風吹)라 표현하고 고향에 가까이 왔음을 표현한 것은 아니였을까?
가지마져 앙상해진 겨울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고향 마을을 향해 지는 해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충암의 말에 오른 뒷 모습이 그려진다.
승구에 있는 풍취(風吹)가 지금은 고향마을 입구를 가리키는 지명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확인 할 수 없지만 우연히 읊었다고 여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
憑闌 (난간에 기대어)
迢遞念家鄕 / 憑闌思更長 (초체념가향 / 빙난사경장)
徽烟凝遠野 / 皎月滿虛堂 (휘연응원야 / 교월만허당)
笛互砧聲動 / 風迎露氣凉 (적호침성동 / 풍영로기량)
苦吟將半夜 / 詩髮變秋霜 (고음장반야 / 시발변추상)
아득한 고향을 그리워함에 / 난간에 기대어 있으니 그리움은 더욱 깊구나
옅은 안개가 먼 들녘에 엉기고 / 밝은 달빛은 마루에 가득하구나
피리소리는 다듬이 소리에 호응하여 울리고 / 바람은 이슬기운을 맞아 더욱 차네
괴로이 읊조리다 보니 밤은 깊어 가는데 / 시를 읊조리는 구렛나루는 가을 서리처럼 변했네
*국역 충암집 상권 61~62쪽
안개와 어우러진 달빛이 가득한 마루라는 시각적 풍경을 피리와 다듬이 소리를 통한 청각적인 이미지로 변환시킨 글로 공감각적 표현이 가미되어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된다.
난간에 기대어 서리 내린 깊은 밤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향수가 잘 드러나 있다.
달 밝은 밤 유점사의 뜰을 거닐으며(楡岾寺步庭月)
一天星月冷清秋 / 千互霜華藹欲浮 (일천성월냉청수 / 천호상화애욕부)
踏盡溪聲孤塔際 / 詩情偏是引鄕愁 (답진계성고탑제 / 시정편시인향수)
서늘한 가을이라 달과 별 명랑한데 / 서리 앉은 푸른 기와 허공 중에 떠있는 듯···
냇물소리 들으면서 탑 곁을 걷노라니 / 시 짓고 싶은 마음 고향생각 불러 일으키네 *국역 충암집 하권 8쪽
이 글은 1516년 가을 금강산 여행 중 유점사 뜰에서 지은 글로 고향 생각에 젖어있는 충암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금강산 비로봉(毗盧峰)을 보고 남긴 贈釋道心(증석도심)이란 시를 지을 때 자주 찾았던 고향 속리산의 비로봉(毘盧峰)도 연상했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혼자만의 생각일 수 도 있겠다.
가을, 달, 서리, 바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일으키는 틀림없는 소재로 충암도 예외일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밤에 앉아 느낌이 있어(夜坐有感)
夙嬰風木無窮感 / 有母孀居鬢欲霜 (숙영풍목무궁감 / 유모상거빈욕상)
榮宦此時陪玉禁 / 綵衣何日壽萱堂 (영환차시배옥금 / 채의하일수훤당)
白雲千里家鄕遠 / 明月三更夢寐長 (백운천리가향원 / 명월상경몽매장)
一縣幸酬烏鳥願 / 百年恩寵荷君王 (일현행수오조원 / 백년은총하군왕)
어려서부터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에 끝없는 감회가 있었는데 / 홀로된 어머님의 귀밑털이 서리가 되려하네
영예스런 벼슬살이에 지금은 임금을 모시고 있지만 / 채색 옷 입고 어느 날에나 어머님께 축수할까?
흰구름 떠있는 고향은 천리 먼 곳에 있는데 / 달 밝은 3경에 꿈길도 길구나
하나의 현이나마 맡아 까마귀의 바람에 부응했으되 / 백년에 갚을 은총을 임금께 입었구나 *국역 충암집 상권 101~102쪽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한 다음해인 1508년(23세)에 지은 글이다.
풍목(風木)은 풍수(風樹)와 같은 말로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을 말하며 귀밑 털이 희게 세지고 있는 홀 어머니에 대한 염려를 말하고 있는 글이다.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관리가 되었으니 부모의 바람도 이루었고, 왕의 큰 은총도 받아 좋은 벼슬을 하고 있으나, 색동옷 입고 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려 기쁨을 드리고 싶은 날을 기다리며 어머님이 계신 멀고 먼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음을 격조 높게 표현한 글이다.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