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부와 권력은 한 나무의 열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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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부와 권력은 한 나무의 열매가 아니다
  • 보은신문
  • 승인 2020.11.0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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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윤(회남면 산수리)

  우리는 오랜 역사를 유교문화와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유교의 핵심인 예(禮)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것 같다. 예의 기본 개념은 한 마디로 나눔(分)이다. 나눔은 행위자와 상황에 따라 구분(區分)과 분별(分別)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눔의 절대적인 필요성은 나와 남(타인)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구분은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하므로 대부분의 행위자가 예에 대하여 같은 반응을 하거나 동형의 행동을 취할 수 있으나 이성의 눈으로 판단해야 하는 분별에 이르면 사정이 많이 달라져서 다양한 행태로 나타난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지 명예와 부와 권력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는 우리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파생되는 필요악과 같은 현상이고 보면, 나 혼자만 저만치 떨어져서 고고하게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생활은 경쟁이고, 명예와 부와 권력은 경쟁을 통해서 쟁취하려는 대상이자 목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이들 세 명제는 그 중 하나만을 추구하는 분별력이 동반되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우리 조상들은 가을 추수에서 벼를 얼마나 수확했느냐에 따라 천석군 혹은 만석군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천석군과 만석군의 ‘군’자가 ‘군(君)’이었지 ‘꾼’이 아니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부를 축적하는데 근면하고 검약하였으며, 모은 재물을 되쓰는데 더욱 지혜로웠기 때문에 임금 군(君)자를 붙여준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천석군 혹은 만석군 자신이 학문을 닦아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세상의 많은 독재자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이들 모두가 권력을 장악한 후 부와 명예까지 거머쥐려고 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전 수상 리콴유는 재임 30년(1959-1990) 동안 철권통치를 했지만 사후(2015년)에도 여전히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물과 거리와 공무원이 깨끗한 싱가포르’를 만들기에 앞서 스스로 청렴결백하고 가족들에게 또한 엄격했기 때문이었다. 재임 중 일반 국민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파트에 거주했던 그는 연로한 부친(리친쿤)이 보석상 점원(보석 감정사)이라는 사실도 자신의 입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 선조들로부터 예를 배워간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명예와 부와 권력을 동시에 추구하지 않는다. 세계 굴지의 일본 대기업 총수가 낡고 좁은 집에 기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까닭은 부 보다 명예를 택한 때문이다(나카노 고지의 <청빈의 사상>). 그러나 어쩌다가 다나카 전 수상 같은 예외적인 인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상이 되어 권력을 잡고 부와 명예까지 한 손에 움켜쥐었다가 곤혹스럽고 불명예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지금 가까운 우리 주변에는 다나카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명예와 부와 권력은 한 나무에 동시에 열리는 과일이 아니다. 예(나눔)라는 너른 터에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모두 다른 ‘분별의 꽃’을 피워 따로따로 맺는 열매다. 예를 가르치면서 선조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명구를 남겼다. “권력은 당대에 그치고, 잘 쌓은 부는 삼대(三代)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명예는 자손대대로 영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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