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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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인사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10.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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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서울에 올라갔을 때 일이다. 중국 우한코로나의 만연으로 서로가 꺼리는 때인데도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 얼굴을 보자 평소처럼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주먹이 불쑥 들어왔다. 내가 깜짝 놀라자 서로가 서먹한 느낌이 감돌았다. “아, 친구야 우리가 주먹까지 내왕해서야 되겠는가?” 하면서 웃으니 친구도 긴장을 풀고 손바닥을 펴서 악수를 했다. 그 순간은 잘못되어 우한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싶었다. 서로가 주먹을 마주치는 모습(인사?)을 이번에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권투선수들이 링에 올라가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는 무언의 언약의 표시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권투와는 거리가 먼 얌전한 친구끼리 주먹인사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색했다. 손바닥과 주먹은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하는 간단한 일이지만 둘 사이의 의미와 인상은 전연 다른 것이다.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라고. 사람이 모든 생물계를 지배함으로서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손”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계에서 두 다리로 서는 동물은 곰, 다람쥐, 캥거루 등 몇몇 뿐이다. 그리고 두 다리로 설수 있는 동물도 역시 그 자세로는 중심잡기가 불안해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동물계에서 두 다리로 지탱하고 꼿꼿하게 선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이 동물의 앞다리에 해당하는 손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비로소 찬란한 인류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섬세한 손을 사용하여 온갖 생활도구를 만들어 물질문명의 혁신을 이루었다. 스스로 만든 기계로 맹수들의 위협을 막고 식량생산에 혁신을 이루어 정신적 안정도 얻게 되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위대한 “손”도 손등이 아닌 손바닥, 주먹이 아닌 손바닥이 문명개화의 주역이었음 알게 된다. 손등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먹으로는 사람들끼리 싸울 때만 사용된다. 결국 주먹은 싸움의 무기인 셈이다. 감정적인 면에서도 손등은 남에게 먼 느낌을 주고. 주먹은 남에게 불안과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손바닥은 상대방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를 준다. 아기의 조그만 손이 우리의 손가락을 꼭 움켜잡을 때처럼 손바닥은 믿음과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악수는 서로가 손바닥을 맞대고 잡는 일로서 서로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다섯 손가락을 모은 주먹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감을 주지 못한다. 반갑다 하며 주먹을 쑥 내미는 것은 모순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짓이다. 주먹으로는 절대로 상대방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 바야흐로 세계는 과거에 유행했던 스페인독감, 일본뇌염 등처럼 중국 우한코로나(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번호같은 것은 외지 못한다)의 창궐로 뒤숭숭하다. 정부는 우한코로나의 창궐을 이유로 비판 세력들을 진압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전 서울에 가서 전철을 탔더니 만원 칸에서 옆 사람과는 서로 배와 등을 맞대고 있어서 얼굴들이 10센치 떨어지기도 어려웠었다. 거기서 마스크를 끼고 서있자니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에 해(?)가 되지 않는 집회나 전철, 관광지 군중에게는 별 조치없이 광화문 집회만 철통방어와 협박으로 막는 모습을 보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이번 10월 3일에 서울시내 버스들을 동원하여 광화문 일대에 철옹성을 쌓고 필요하면 언제나 인신구속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과거 촛불시위로 집권한 현 정부가 이제는 촛불시위마저도 원천봉쇄함을 보고 암담한 생각이 든다. 우한코로나시대에 나타난 괴물 “주먹인사”까지도 우리의 심사를 더욱 어둡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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