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풍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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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풍년시대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7.2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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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는 우리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용어다. 같은 차원에서 이미 한물간 느낌이 드는 “문화인”이란 말도 있다.
문화라는 용어는 1875년에 일본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나 중국의 “문치교화”가 그 어원인 듯싶다. “문화”란 원시(미개)상태의 자연에 인공이 가해진 모든 것(물질문명), 그리고 어떤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행위(정신문화)라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에는 문화와 문명을 분리해서 이해했는데 지금은 둘 다 문화라는 말로 통합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문명을 구별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문화와 관련해서는 동물들도 의미를 이해는 하겠지만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사람을 비롯한 뭇 동물들이 먹고 씻고 하는 보통의 물을 성수(聖水)라고 승화시키는 행위가 과연 침팬지에게도 가능할까?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전쟁이나 폭동 같은 대규모 충돌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갈등은 문화적 우열에 대한 생각차이에서 온 것이며 대표적인 것이 종교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우열은 문화를 서열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문화를 평가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다. 여기에는 견해가 나누어지는데 아무도 문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측이 있는 반면, 진화론자의 생각은 문화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에로, 또 원시적인 것에서 고도로 발전한 것에로 옮겨가고 있어서 우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후자에 더 관심이 간다. 만일 네 문화와 내 문화는 서로 다를 뿐이지 우열은 없다는 생각(예를 들어 아프리카 원주민 문화와 현대의 서구문화)이 지배적이라면 인류문화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더구나 지금처럼 우주로 뻗어가는 고도의 문명사회에도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를 하향평준화에 맞춘다면 미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잔존하는 몇 개의 평등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문화의 파생어로 문화인이 있는데 교양인, 점잖은 사람, 신사, 지식인 등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기적이지 않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먼저 남을 배려하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문화적인 사람을 지칭한다고나 할까.
이와 달리 “미개인”은 원시자연 상태의 사람으로 그저 동물적인 삶과 생존경쟁에만 매달리는 사람,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자연 상태에서 사는 이들에게나 붙여질 수 있는 단어다. 문화는 이처럼 긍정적이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마법의 약처럼 통하고도 있는 것 같다. 문화라는 말이 들어간 용어는 모두 좋아 보이기 때문인지 그런 이름의 행사들,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또, “민속문화”, “서민문화”, “여성문화”, “향토문화”, “음식문화”, “공연문화”, “제례문화”, “출판문화”, “기독교문화”, “불교문화”, “인터넷문화” 등과 같은 특정단어와 접합한 합성어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 곧이어 “거리문화”, “시위문화”, “저항문화”, “뒷골목문화”, “깡패문화” 까지도 나올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문화풍년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문화라는 단어가 매력적이어도 “춤문화”니, “무속문화”니, “제주여행문화”니 등과 같이 문화사족(文化蛇足)의 무분별한 사용은 겸연쩍기만 하다. 단순히 “무속”, “춤”, “제주여행”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문화가 아니랄까봐서, 문화대열에 끼이고 싶어서 그랬을까? 왠지 갓쓴 양복쟁이를 보는 것 같아서 괜히 주위를 살피게 되고 무안해서 몸 감출 곳을 찾게 된다.
하지만 중국발 우한폐렴이 전 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이 풍진’ 문화풍년시대에 대중문화는 절멸위기에 놓여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해 다니니 “관광문화”도 한산해 지고 있다. 국가는 물론, 재래시장의 폐쇄로 인해서 길바닥장사로 생활하는 서민들은 그저 죽을 맛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핵무기나 문화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전염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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