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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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0.07.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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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이야기다. “올 가을은 금수강산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 것 같아요” 좋아했다. 하루하루 더 고와지던 산천의 자태가 찬 기운의 재촉에 하나둘 옷자락을 벗어 가랑잎으로 내동댕이친다.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휘날리는 가랑잎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아침이다. 나도 이젠 계절을 가볍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내 삶의 계절과 비교를 하게 된다.
  “한 겨울엔 모진 북풍에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지만, 잎이 무성한 여름이나 가을엔 크고 작은 태풍에 나무들이 쓰러지곤 하지요. 그건 이파리들을 무겁게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욕망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미련하게 주렁주렁 달고 있으면 더 힘들고 자칫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문학에 조예가 깊으신 현진스님의 말씀이다.
  무거우면 기울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새털같이 가벼운 눈송이도 가지마다 수북이 쌓이면 그 무게를 감당 못해 가지가 부러지는 것처럼 별것 아닌 듯 작은 욕심들이라도 쌓이면 지탱하기 어려워 질 것이니 미련을 버리라는 말씀이지 싶다. 경험에 의하면 욕심이란 것이 아무리 내버리고 던져버려도 돌아서면 어느새 달라붙어 있곤 한다. 여러 번 실패 끝에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하나씩 나눠서 내려놓는다. 연전에 명예욕 보따리 하나 내려놓는 데 제법 긴 시간을 먹었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마음이 편안하고 개운하면 제대로 버린 것이다. 
  단풍의 아름다음에 빠지던 지인들이 늦가을 숲길을 소소한 이야기와 함께 사그작 사그작 가랑잎을 밟고 있을 때, 누군가 빈 나무 둥지들이 쓸쓸해 보인다고 한다. 시인들도 늦가을 겨울 나목을 외로움으로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빈 둥지가 아니다. 우선 보기엔 이파리들이 없어 쓸쓸해 보이는 것 같지만 외롭지 않다. 다 내려놓고 봄이 오면 새움을 틔우기 위해 둥지 내면엔 더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한겨울에 눈 덮인 날, 벚나무 둥지에 귀를 대고 꼭 껴안아 본 적이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어떤 울림을 느꼈다. 긴 겨울 북풍에도 얼지 않는 것은, 새봄에 태어날 아가들을 위해 행복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재를 구입해서 상품화가 되는 과정의 제조 공장 로테이션처럼, 땅에서 영양소와 수분을 빨아들이고, 실어 나르고, 제조하고 공급과 저장까지 바쁘게 일하고 있는 둥지 속을 알면 한겨울 나무둥지가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이요 행복이다.
  활엽수의 둥지가 임무 끝난 이파리들을 깔끔하게 털어 내고 새 출발을 준비 하듯, 내 머리와 가슴을 집적거리는 잡동사니들을 깔끔하게 털어내지 못하는 자신이 참으로 답답하고 부끄럽다. 관념이나 습관들이 이렇게도 질긴 것이었나 싶다.
  쇳덩이를 발갛게 달구었다가 찬물에 식히고를 거듭해서 고철이 강철 되는 것처럼, 아프게 하고는 쓰다듬어주고, 슬프게 해놓고는 위로해 주며, 울리고 달래며 스쳐간 세월이 나를 너무 단단하게 굳혀 놓았나보다. 평생 동안 내 모든 세포에 깃든 세상 바람결과 시간들을 누에가 실을 뿜어내듯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내고 싶다. 문득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퇴계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내 전생에는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을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그렇다면 내 영혼은 몇 생을 더 노력해야 이해인 수녀님처럼 곱고 아름다워 질까. 생각에 잠기며 돌아오는 길, 자동차 바람에 휘둘리는 가랑잎이 아침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며 여봐라는 듯 논밭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지, 억지로 비우겠다고 애쓸 것 없잖은가. 잡동사니라고 판단되는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내가, 오히려 하잘 것 없어지는 게지. 비우고 틔우는 활엽수도 있지만 평생을 상록수로 살고 있는 소나무도 부분적이지만 버리고 또 새 움을 틔우지 않는가. 무조건 다 비우려고 애쓸 것도 없고 억지로 조금만 비우려고 애쓰지 말자는 게다. 그렇다. 내 둥지도 새로운 지식 쌓고, 사랑으로 베풀며 살다보면 저절로 잡동사니는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마음을 굳히고 일기장을 덮는다. 조금 객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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