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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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7.0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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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러운 데를 닦는 걸레는 자기 온 몸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존재다. 사람들은 그 고마움도 모르고 더럽다면서 천시한다. 더러운 것은 걸레가 아니라 사람의 몸이나 마루의 오물일 뿐이다. 걸레는 평생을 천한 일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쓰레기통행이나 소각으로 일생을 마친다. 조선시대에 제일 하층계급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한 중학생이 자신있게 “쇤네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하는 바로 그 “쇤네”같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것이 인간사회다. 동물세계도 이와 같에서 대장인 고릴라나 늑대의 새끼 역시 무리들로부터 부러움과 보살핌 속에 자란다. 그러나 걸레가 “쇤네”처럼 태생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낙네들이 섬섬옥수로 실을 뽑아 짠 삼베, 무명, 명주 등 옷감들은 다시 삼베옷, 무명옷, 고운 비단옷 또는 보자기 등으로 만들어져서 인간신분의 귀천에 따라 배분되어 일생이 시작된다. 이런 옷과 보자기도 오래 사용하면 퇴색되고 낡아서 헤어지게 된다. 용도폐기된 옷들의 말로는 곧 걸레로 전락한다. 걸레가 된 옷들은 갑자기 천물이 되어 마구 다루어진다. 걸레의 비애는 이때부터다. 걸레가 태생부터 하층민인 “종(노예)”와는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역시 같은 신세다. 종도 처음에는 범죄인인 양민이나 귀족, 혹은 피정복민이 종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흔히 걸레는 하는 일이 천해서 천물로 취급되며 사람도 행동이 천박하면 “걸레”라고 불린다. 정조관념이 헤픈 여자 역시 “걸레”로 취급된다. 지금은 이미 타계하고 없지만 한때 기이한 행동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바 있는 한 “걸레승”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나는 걸레”라고 했다. 그는 승복만 입었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짓 중에서도 가장 하천한 짓만 골라서 했다. 어느 날 저녁에 승려시인인 “황모”씨와 청계천에 있는 큰 정원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가 그자를 본 일이 있다. 식당 정원에는 나무들이 많았고 이곳저곳 나무 아래에는 식탁이 놓여 있어서 사람들은 술을 걸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승복을 입은 중 한명이 나타나 비틀거리면서 저만치 오더니 나무에다 대고 오줌을 갈기며 여기저기 뿌려대는 것이었다. 황시인은 “저놈이 중광이다.” 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 당시는 불교조계종이 지금처럼 총무원으로 통합된 단일체제가 아니고 총무원과 규정원의 양두체제로 운영되던 때라서 승려를 규찰하는 규정원은 총무원의 지시를 받지 않고 교계에서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다. 황시인의 말로는 “저놈”을 잡아다가 ‘매타작’을 하고 승복을 벗겨서 내쫓아버렸는데도 계속 승복에 저짓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 승려의 짓거리를 보고 황시인도 손이 근질근질 했겠지만 우리는 참으면서 그 꼴만 보고 있었다. 걸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역시 험구도 걸레취급을 받아서 함부로 저질스런 말을 해대는 사람의 입을 “걸레입” 또는 “기저귀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걸레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걸레가 있다. 조선조 왕들의 항문을 닦는 걸레는 비단천을 이용했다는 말을 조선왕실 마지막 상궁인 김명길의 회고록에서 읽은 적이 있다. 비단천을 적당한 크기로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임금이 뒷간에서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임금의 화장실 방이 뒤쪽에 있는데 일본어 안내원이 일인들에게 임금의 화장실을 소개하니 일본인들이 깔깔 웃고 해서 창덕궁소장시절에 내가 금지한 바도 있다. 생각해보면 서민들은 짚이나 신문지로 항문을 닦는 데도, 어떤 자는 비단천으로 또는 고운 문종이로 항문을 닦았으니 사람이라고 해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걸레는 그 이름부터 천한 것이어서 아무리 빨아도 “걸레”는 역시 걸레일 수밖에는 없는 숙명이다. 아무리 깨끗해도 걸레로 얼굴이나 자기 유방을 닦는 여자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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