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 먼 이웃 일본
과거는 울었지만 미래는 웃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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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 먼 이웃 일본
과거는 울었지만 미래는 웃고 살아야지…!
  • 강대식
  • 승인 2020.06.25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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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짜리 어린 왕자가 일제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의 손에 이끌려 남대문 정거장에 기차를 타러갈 때, 연도에 나온 백성들은 길을 막아서며 모두 목 놓아 울었다.”
서기 1907년 12월 5일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이 일본으로 끌려가던 날의 풍경이다. 바로 조선 왕조의 패망, 우리민족이 일본 식민지배를 당하는 전조였다. 그리고 재일교포, 재일동포 혹은 자이니치(在日)로 불리는 국외이주동포의 대량양산을 암시하는 예고편이었다.
영친왕의 생애는 비참했다. 도쿄로 끌려가 외부와 격리된 채 일본왕실의 교육을 강요받으며, 편지마저 검열당하는 창살 없는 감옥살이를 했다. 어머니 엄비의 임종도, 아버지 고종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비운의 황태자는 말년에야 고국에 돌아왔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실어증(失語症) 환자가 되어 돌아온 쓸쓸한 귀국이었다. 그렇게 폐인처럼 6년을 더 살다가 끝내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힘없는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20세기 아픈 민족사의 단면이다.
왕족의 삶이 이럴진대 일반백성의 삶은 오죽했을까. 조선총독부에 의해 징용되었거나 궁핍을 견디다 못해 일제의 본산 일본행 연락선에 오른 동포는 허다했다. 망국의 황태자 영친왕부터 민족단체 민단을 창단한 열사 박열(朴烈), 규슈의 해저탄광에 노무자로 끌려간 갑돌이 아버지까지 제각기 사연은 달라도 현해탄을 건널 수밖에 없던 우리 동포들이다. 조선인 징용자는 일본 전체탄광 노동력의 3할, 죽음의 중노동으로 꼽히는 갱도작업자의 7할을 맡았다. 징용사망자가 10만 명에 달했다니 목숨을 내건 위험현장마다 동포들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막장인생을 살면서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떠올리며 생(生)을 부지했던 재일동포들이다. “닌니쿠 쿠사이(にんにく臭い, 마늘냄새 고약해”, “조센진(朝鮮人, 한반도 출신자를 일컫는 차별용어)”이란 모욕을 매일같이 들으면서도 생존을 위해 일본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벌어진 실화이다. 「자이니치 리더」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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