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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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와 피
  • 오계자 소설가
  • 승인 2020.06.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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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를 밭에도 심는다는 사실조차 생소한 새댁이 벼 밭을 매기위해 어머님 뒤를 따랐다.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어머님이 뽑아내는 것은 벼가 틀림없다. 용기 내어 어머님께 물어보았다. “어머님, 지금 뽑으신 거 나락 같아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게 피지 어떻게 나락이냐.” 하신다. 머쓱해서 돌아서자 낮은 목소리로 “이거 피는 더 맨들거리잖어.” 하셨다. 어머님이 뽑아내신 피를 들고 내 자리로 와서 하나하나 벼와 대조해가며 맨들 거리다? 맨들 거리는 게 빤질빤질 한 것인가? 당최 알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색깔이 더 진하고 억센 것이 피라고 판단했다. 가뭄이 심할 때라 밭은 딱딱해서 손에는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손에 감았다. 이랑이 긴 밭인데 어머님은 벌써 돌아오신다. 거의 한 이랑 정도 뒤쳐진 상태다.
  따라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을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고 오는 이랑에서 만난 어머님의 지둥 치듯 큰 소리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거름 빨 잘 받아 좋은 나락을 다 뽑았다는 말씀이다. 벼와 피의 다른 점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는데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다. 머리에 쓴 수건이 손으로 갔으니 그 뜨거운 뙤약볕에서, 그만 서러움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도 어머님을 따라가야 된다는 마음에 쉴 틈 없이 호미질을 했다. 혼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나락을 뽑아낸 것이 아까워서 이번엔 벼와 구분이 안 되는 피를 아예 뽑지 않고 다른 잡풀만 뽑기 시작했다. 손에 물집이 터져 따갑고 쓰라리지만 수건만 더 세게 감았다. 그러던 중 어머님과 또 만났다. “피는 하나도 안 뽑고 앉아서 세월만 보내느냐” 고 하신다. 그래도 멀쩡한 나락 뽑아내는 것 보다는 괜찮은 선택이라는 마음으로 다소곳했다. 배는 고프고 손바닥은 쓰라리고 따가워도 얼굴 타는 것이 더 애가 탔다.
  점심 먹으러 내려올 때 어머님 몰래 벼를 둬 포기 뽑고, 어머님이 뽑아내신 피를 같이 들고 내려왔다. 시누이에게 벼와 피의 구별을 어떻게 하느냐 물어보았더니 보면 안단다. “그냥 척 보면 다르잖아.”라는 대답뿐이다. 점심상을 물리기 위해 사랑채에 가서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줄기를 봐, 잎줄기가 벼보다 조금 더 굵고 억세게 생겼지, 그리고 잎이 더 넓은 겨.” 할아버지 말씀은 바로 내가 생각하는 피 그것이다. 이제 겨우 15cm 정도 자란 벼와 피는 내가 보기엔 줄기도 넓이도 별 차이가 없다. 하는 수 없이 국어사전을 꺼냈다. <맨들 거리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느낌이 자꾸 나다.>
  사전을 보고 더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더 부드러운 것이 피란 말인가. 반세기가 지난 후, 일전에 어느 시인 교수의 글에서 ‘햇볕에 비추어 좀 더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피’라는 글을 보고서야 어머님의 맨들 거린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땅에 뿌리내린 어린 피를 어떻게 햇볕에 비출 수 있나. 아직도 나는 어린 피와 벼의 장벽을 넘지는 못하고, 제법 많이 커야 구분 할 수 있다.
  그땐 밭을 매면서 어찌나 피가 원수 같은지, 범죄자는 모두 피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살면서 피 같은 인생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벼와 피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피 같은 인간이라도 노력에 따라 벼보다 더 대접 받을 수 있고 벼 같은 인생이라도 피 같은 인생으로 타락해서 사회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사람 사는 이치라는 것을 깊게 생각했었다.
 인간세상에서 피처럼 살 것인가 벼처럼 대접 받으며 살 것인가는 스스로의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교과서 같은 말이다. 알면서 피 같은 삶을 사는 경우가 있으니 문제다. 내 인생의 경영주는 자신이다. 말로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할 게 아니라 경영을 잘 해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살면서 가끔 네 둘레를 살펴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과 따뜻함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소확행이 된다.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이 그리운 시대에 이웃에 도움의 손을 내밀면, 도움을 받는 쪽보다 주는 자가 훨씬 더 보람이요 행복이라는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벼 밭에서 대접 받는 벼처럼 사회에서 대접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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