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 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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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오계자 소설가
  • 승인 2020.04.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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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내 시선에 포착된 뒤꼍 블루베리 나무의 빨간 잎이 “어여가.” 손짓 한다. 곱게 물든 산천의 풍광도 퍼 담고 벗님들 수다도 퍼 올리고 싶어졌다. 내가 닉네임을 두레박으로 결정한 것도 일종의 욕심이었던가? 글감도 퍼서 담고 사랑도 퍼 올리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욕심이 맞긴 맞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내게 행복을 주는 길 위의 여자가 되었다. 매달 만나는 벗들보다는 예술 작품 전시회 같은 금수강산이 더 설레는 나들이다. 동기 모임에 둬 번 결석했더니 모두들 반갑다. 11월 초의 산천을 닮은 여인들이다. 앉으면 미래 이야기 보다는 지난 추억 꺼내기 바쁘다.
  입은 하나뿐이고 음식 먹으랴 추억 보따리 풀어 놓으랴 바쁜 시간이 익어갈 때 1학년 때 짝꿍이 곁에 오더니 “니 상담 일 한다 카더라. 오늘 시간 되면 상담 좀 하고 갈래?” 친구의 아들이 화가인데 요즘 갈등을 겪고 있나보다. 화가의 길이 힘들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줄 생각까지 하는가보다.
  상담봉사 손 놓은 지 한참 됐지만 젊은 화가와 찻집에서 이런 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가 꽤 진지할 즈음에 그의 질문이다. 다행히 대화가 통했나보다. “어쩌다 걷잡을 수 없이 욕심이 설치면 선생님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립니까?” 아마 그림에 대한 욕심은 이글거리고 현실은 해가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언덕배기에 걸렸나보다. 뜻밖의 질문이지만 평소에 가끔은 숙고熟考 해본 문제라 오히려 반가운 화두였다. “나는 욕심이라고 무조건 억제하지는 않아요, 주로 호수를 찾아서 설레발치는 욕심보따리를 수면에 풀어헤쳐봅니다. 그 중에서 아니다 싶은 것이면 날려버리고, 실천 가능하거나 지나치지 않은 것은 이치에 맞도록 이성적으로 정리를 해요. 차근차근 실천합니다. 내 욕심은 부富를 향한 욕심이 아니고 젊은 시절부터 명예욕 보따리의 덩치가 좀 있었어요. 내려놓으려니 참 질기게 잡더군요. 이젠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취미 활동조차 뒤지는 게 싫어서 욕심을 내는 걸 느끼면서 역시 나는 나다. 두부모 자르듯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냉철하게 자를 건 잘라야지요.” 잠시 찻잔만 바라보다가
“무엇을 그렇게 하고 싶은데요? 웬만하면 아직 젊으니까 욕심을 욕망으로 전환하세요. 가슴에 욕심이 자리 잡고 있으면 자칫 괘도를 벗어날 수가 있어요. 욕심은 죄를 낳는다고 성경 말씀에도 있지요. 하지만 욕망이 가슴을 차지하면 열정을 불러와요. 허나 구 선생은 예술가예요 예술에는 욕심은 물론 욕망도 장애물이지요. 오직 그림만 즐기고 사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림에 빠져 들고 미쳐야지요.”
  빙그레 볼웃음을 머금고 그가 다시 꺼내는 말은, 처음에는 하찮게 여겼던 작은 욕심 하나가 이젠 감당하기 힘들만큼 무거워졌단다. 욕심에 무게를 느낀다는 것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어떤 불안감이 싹트고 있음이다. 말하자면 그 욕심의 무게로 인해 예술적 영혼에 압박을 받는 거다. 심리적으로 볼 때 이 씨앗은 욕심을 더 움켜쥐게 만든다. 한참 동안 대화를 하는 중에 무엇이 이 사람에게 욕심을 심었는지 알겠다.
주변에서 지나치게 부추긴 것이다.
은근히 세기의 유명화가를 가슴에 품게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욕심은 그림을 즐길 수 없다. 예술가에겐 가장 큰 장애다.
  내담자를 만나면 주로 경청을 해야 하는데 이 화가는 처음부터 하소연이 아니라 조언을 듣기 위해 나를 만난 것이다. 이런 경우 본인이 모르고 있는 덕담이 아니라 알고 있지만 잠자고 있는 상식을 깨우쳐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차분한 사람이라 통할 것 같아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조 한 알’ 시를 읊어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때마다 무위당 선생님은 하잘 것 없는 좁쌀 한 알을 두고 마음을 추스른다고 하신 말씀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는 조 한 알에 불과하다. 이런 이치를 일깨우면 아무래도 자신의 욕심이 허황되다는 걸 깨닫고 욕망이 고개를 숙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변화를 보였다. “꿈이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의욕마저 잃는 거지요 허나 그 꿈이 허황되다면 세상 헛삶이 되는 겁니다. 교과서 같은 방법을 선택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림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면 아주 단순하게 다 버리고 그림에만 빠져요. 아니면 그림을 취미로 자리바꿈하고 아버지 일을 도우며 세상물정 배우는 길입니다. 그는 밝은 얼굴로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 친구의 전화다.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리라고 했다. 믿음이다. 아들을 믿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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