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에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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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부침
  • 김종례(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2.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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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은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의 축복이다. 그 느낌을 혼자서만 아니라 모든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기원은 글을 쓰게 한다. 
 2월초 채 떠나지 못한 북풍 한 가닥이 울먹이던 입춘 무렵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이파리 훨훨 털어버렸던 나무들에게 신비로운 생명의 몸짓을 보내고, 긴 겨울 침묵의 역풍을 깨트리며 덧나버린 코로나 확산의 통증까지 씻어주나 싶었다. 봄비를 빨아들인 대지의 기운을 전달받은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대며 2월을 환영하더니, 정월 대보름에는 대낮처럼 환한 호수에 달님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중순경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서설이 축복처럼 쌓이니 모든 게 순조롭게 흐르며 봄이 오는구나 싶었다. 피날레로 다녀간 산봉우리 잔설은 비릿한 물살로 흘러내려 채움과 비움의 교차로에서 대지로 흡수되었다. 오래된 아픔까지 껴안고 허공에서 몸부림치는 봄바람에 코로나도 날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였던 2월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짙은 어둠을 지나야 여명의 새벽이 오듯이, 고난과 아픔 뒤에 윤택한 삶이 찾아오듯이, 2월의 잔설을 뚫고 꽃샘추위를 겪고 나서야 3월의 찬가는 불려 질 것이 분명하다. 눈으로는 뵈지 않던 우주의 기운이 날마다 새롭게 깨어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2월이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에 이르렀다.
 2월의 노래는 땅 속으로부터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나목의 찬가라 아니 할
수 없다. 망막하고 메마른 가슴에도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면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하는 저 투명나무들을 바라보자! 지금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새 희망을 선물하는 나목의 노래야말로 소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接(덧말:접)地(덧말:지)氣(덧말:기)兒(덧말:아) 흙속에 묻혀 꽁꽁 언 꽃씨도 깨우려는지 대지위에 작란의 불씨를 피우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순식간에 지나간 입춘과 우수가 소망의 꽃씨를 매달고 와서 우주만물을 깨워놓고, 겨우내 곤고했던 우리 안에 불안과 어두움까지도 치유해 줄 것을 믿고 싶은 오늘이다. 나도 가만히 앉아 봄을 기다리기보다 온 몸으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마당과 꽃밭을 바스락대며 걸어본다. 서랍 속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꽃씨를 거풍해주며, 우리 안에 숨어있던 살풀이 한마당 경칩을 향해 휘두르고 싶은 우수이기 때문이다. 
 이제 3월이 되면 정말 누렇게 변했던 잔디도 병아리색 기운을 찾을 것이고, 나무 옆 잔돌 틈을 비집으며 제비꽃도 고개를 살포시 내밀 것이며, 여기저기서 새 학년을 맞이하는 아이들도 저마다 새 꿈을 펼칠 것이다. 개나리 꽃잎처럼 살랑거리며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그 연한 입술로 파랑새처럼 지저귈 것이다. 2월은 이렇게 모두의 가슴마다 약동하는 봄의 메시지를 흩날리며 지나가고 있다. 마지막일거라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고, 연둣빛 소망을 품을 수 있는 3월을 맞이하라고~~  한낱 우주의 원소인 사람에게 교훈을 주면서 말이다. 
 삭막했던 긴 겨울을 보내고 난 우수쯤에는 누구나 이렇게 장밋빛 꿈을 꾸기 마련이다. 올해도 들꽃 한 송이를 함께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오늘이다. 여러 국면에서 어렵고 힘든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미소로 손을 잡아주며 함께 3월을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 마음속에 고여 있는 슬픔 한 덩이, 가슴에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공유하면서 가야 할 것이다.
바람 한줄기가 겨울 수묵화에 걸려있던 매듭의 실타래를 풀어내느라 종일토록 일렁거린다. 우주에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가지마다 이파리를 싹트게 하는 봄바람일 것이다. 3월을 기다리는 독자 여러분의 가정과 보은 지역 구석구석마다 봄의 화목한 기운이 따스히 스며들기를! 오랫동안 엉켜있던 맞대결 앙금의 실타래도 순리적으로 풀려져서 소통과 화합의 역사로 군정이 이어지기를! 우주의 섭리대로 풀려가는 우수의 강물 따라 코로나19까지 말끔히 떠내려가기를 기원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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