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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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감투
  • 홍근옥 (회인해바라기작은도서관)
  • 승인 2020.01.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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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옥아, 축하해. 너 부녀회 총무 됐다”
밑도 끝도 없이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괄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사 올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다.
 “엥, 총무? 언니, 난 직장에 도서관에 바쁜 거 알잖아? 그리고 그동안 부녀회도 잘 못나갔는데 갑자기 웬 총무?”
 “시끄러, 새해부터 부녀회 총무니까 그런 줄 알어”
축하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전화인데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앞 뒤 자르고 툭하고 던지는 말투가 사실은 나에 대한 믿음과 친근함의 표현임을 알기 때문이다. 순간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언니 주변에는 마을 부녀회원들이 모여 앉아 있으리라, 새해를 맞아서 새로운 임원을 꾸리면서 누군가 내 얘기를 했을 테고 이 언니가 총대를 메고 전화를 했으리라. 어쩌면 걘 내가 전화하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큰소리라도 쳤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거절하는 순간 언니의 체면은 사정없이 구겨질지도 모른다.
 “그려, 언니. 내가 돈 관리하고 반찬거리 사오고 하는 심부름이라면 잘 할 수 있어. 내가 할게” 새해 벽두부터 벼락감투를 쓰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 온 지 8년 만에 마을 아줌마로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올랐다.
 남편과 함께 떠난 산티아고 순례 길, 처음 시작할 때는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순례자들이 제법 많았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온 사람이 제일 많았지만 미국 아프리카 러시아 벨기에 브라질......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숙소에서 자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자연스럽게 쉬운 말로 인사를 건네고 먹을 것과 정보들을 나누기도 했다. 순례길에 다른 순례자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때로는 그들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기에 늘 함께 걷던 남편마저 발목이 아프다고 버스를 타고 가버려서 꼬박 이틀간을 혼자 걸어야했다. 더 호젓하고 좋지 뭐,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어느 순간부터 허전하다 못해 외롭기까지 했다. 허허 벌판에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 홀로 걷다보면 혹시나 엉뚱한 길로 잘못 들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저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라도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 힘을 준다는 것을. 어쩌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옆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두들 나를 좋아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나 잊고 지냈구나.
 되짚어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동네 친구들과 언니들을 불러 모아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숨바꼭질 등으로 해 저물 때 까지 뛰어 놀았다. 밥 때를 놓쳐서 엄마의 꾸지람을 듣고, 꾸벅꾸벅 졸며 겨우 숙제를 하고는 쓰러져 잘 정도로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책과 내면으로 쏙 빠지기 전까지. 그런데 낯선 나라에서 혼자 길을 걸으며 내가 아주 오랫동안 어울려 사는 법을 잊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다.
 어쩌면 여행에서의 이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부녀회 총무라는 엄청난 직책을 선선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찮기도 하거니와 이런저런 일로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은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웃으면서 함께 걷는 길,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순례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모습이 아닐까? 벼락감투를 쓰고 나니 뒤늦게 철이 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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