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현·윤순하 부부
올해 마흔의 동갑내기 부부로 보은읍 노티리에서 살아가는 한상현, 윤순하 부부는 오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 뒤편의 언덕배기 과수원으로 향한다. 겨울 동안 못쓰게 된 사과나무 가지를 잘라 주는 건지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두막에 갖다 놓은 라디오의 다이얼을 맞추니 몇 해전에 설치한 낡은 스피커에서 트롯트가 흥겹게 흘러나온다. 지난 늦가을 꼭두새벽부터 밤중까지 사과를 딸 때 이 라디오와 함께 목청껏 노래도 불렀었다.코흘리개 시절 소꿉장난하며 노티리에서 함께 자라다 꽃다운 처녀, 총년 때 4-H 활동을 하며 애틋한 감정을 느껴 전격 결혼한 이 부부는 40여년을 한시도 떨어져 본적이 없다. 봄에는 퇴비를 주고 어린 사과를 솎아 내는 적과 작업을 하며 여름은 10일마다 농약을 준다. 가을에 제일 바빠 추석사과 먼저 출하하고 11월말까지 노티사과의 진수인, 단물이 입안 가득한 부사를 수확한다.
지금 같은 겨울이면 전지 작업을 틈틈이 하며 사과의 판로를 개척하기에 바쁘다. 1년365일 서로의 흘린 땀을 닦아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사과 상자를 나를 때면 꼭 티격태격 다투게 되는데 이것은 순전히 남편의 급한 성격 때문인 듯 가볍게 눈을 흘기는 부인을 보며 남편은 허허 웃는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몇 해 전 한밤중에 뚱딴지같이 내일 우리 집 짓자고 해서 갑자기 짓게 된 집이었을 정도라며 말이다.
지금 같은 겨울철이면 봉고 트럭에 한차 가득 사과 상자를 싣고 울산으로, 청주로, 대전으로 달린다. 다른 도시의 가정집, 식당, 유치원 자모회 등과 직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보은공판장 가격으로 15㎏당 2만3천원씩 받는 것을 울산에서는 2만5천원씩 받을 수 있어 운송비 빼고도 돈이 더 벌려 재미가 솔솔 하다. 후식으로 사용되어 식당에서 특히 많은 주문하는데 한 번 맛을 본 식당은 계속 주문을 하여 수량이 딸릴 정도다.
울산에서 유명한 얼음골 사과도 보은 구티사과의 당도를 따를수 없다는 얘기다. 「울산, 청주, 대전에 갈 때면 꼭 시누이나 친척집에서 2∼3일씩 쉬다 오는데 이것은 도시 봉급생 활자가 결코 맛볼 수 없는 농촌생활의 멋과 여우가 아니겠어요」하며 웃음 짓는 윤손하씨. 요즘 세상은 맞벌이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부부가 동등하게 일하게 될 21세기의 모습은 그 동안 논과 밭에서 계속 함께 일해 온 농촌 부부의 생활 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인 윤손하씨는 가계부 대신 영농일지를 꼬박꼬박 쓴다. 그날의 과수상태 등을 메모하는데 재배기술에 대한 열의가 여느 사내 대장부 뺨칠 정도다. 같은 종류와 양의 노동을 하는데 있어 여자의 약함을 내세우는 것은 농촌 사람에게는 우스워 보인다. 농촌에는 여자, 남자란 세상의 잣대가 필요치 않다.
오직 흙을 사랑하며 정직한 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20㎏이 넘는 플라스틱 사과 상자를 번쩍 번쩍 들어올려 트럭에 싣고 있는 윤순하씨의 건강한 팔뚝이 고급 화장품으로 덧칠한 어떤 여성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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