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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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바람이 분다
  • 보은신문
  • 승인 199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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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농촌지역의 새 문화기류 밀폐공간서 공동체 의식
노래방이 농촌지역 문화에 어떤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짚어 보는 것은 아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도시 못지않게 농촌지역에도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마땅한 놀이 문화나 문화공간 레저시설이 없는 농촌지역의 현실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농촌 총각 결혼문제가 사회문제화 될 만큼 농업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님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농촌이 문화 향유의 불모지인 것도 이 같은 농촌총각을 향성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농촌지역의 기혼자들은 자신은 물론 농촌 주부들에 대해 팽창하는 문화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까 가장 큰 고심 거리가 됐다.

산외면 구티리에 사는 농민 이모씨는 「사실상 농촌이 살기가 좋아졌다 해도 여성으로서는 일이 힘에 벅찬 게 사실입니다. 방송 매체에서는 늘 화려한 도시 생활을 그리고 있는데 집사람이라고 그런 생활을 향휴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일이 고된 날은 특히 이웃과 어울려 시내에 나와 회식도 하고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엘 함께 갑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날의 피로도 풀리는 것 같고 이웃과의 친밀감이나 일체감을 갖게 됩니다」

이 얘기는 농촌지역에서 노래방이 어떤 문화적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가요주점을 경영하는 최모씨. 「가게를 찾는 손님 계층은 주로 읍내권의 직장인도 많지만 최근 들어 농촌에서 나오는 농민들이 많은 부분을 찾고 있습니다. 대부분 마을 단위에서 단체로 찾고 있는데 요즘 같은 농한기에도 많이 찾지만 농번기에도 수시로 찾아 피로를 푸는 것 같습니다」고 말한다.

이는 노래가 유일하게 농촌지역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임을 대변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도시나 농촌이나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일까?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문화는 단연 노래이다. 광범위한 생활 형태의 모든 것을 문화로 해석할 경우 노래가 문화에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크기 때문이다. 풍류와 가무를 즐기던 역사적인 고찰을 들지 않더라도 한국의 정서는 노래와 아주 밀접하다.

한국인의 한과 억눌림을 노래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있고 시대적 배경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 많음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은 곧잘 혼자서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또 둘이나 여럿이 모이면 모든 자리는 노래로 이어진다. 한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은 처음 봤다고 한다. 성업을 이루고 있는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을 보고 한 얘기다. 노래를 부리기 위한 노래방은 지난 91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해 92년부터는 술을 겸한 가요주점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눈에 살던 노래방과 가요주점이 지금은 한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관내에서도 30여개 업소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순전히 노래만을 부르기 위한 노래방과 주류를 곁들인 가요주점. 사무실 직원간에 회식을 마치고 2차로 직행하는 코스는 당연 노래방이나 가요주점이다. 계모임이나 동창회원 들간 모임을 마치고 또는 가족간 외식 후에도 곧장 노래방을 찾는다. 노래를 하기 위해서다.

둘만 모여도, 노래를 부르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노래방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관객(일행)앞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혼자 부르는 노래는 남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이유로 우쭐감을 더해 준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못하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뒤쳐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노래를 잘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물론 모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또 노래를 잘하는 것이 노래방에서 만큼은 사회생활이나 업무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스트레스와 일상의 중압감과 억눌림을 마이크를 통해 배출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하루종일 흙과 씨름하던 일상들을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잊는 것이다. 또 작은 밀폐 공간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남의 노래를 듣다 보면 소속감과 일체감이 생겨 마음이 하나가 됨을 느낀다. 농촌까지도 확산된 비인간화된 사회구조와 사라진 공동체 의식에 대한 반발과 반동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시에서는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조속에서 탈출구로 노래를 택한다면, 농촌에서는 신명나게 한바탕 놀므로 해서 하루 일과 동안 고된 육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는 것이다. 흙속에서 인생을 찾고 있지만 한번뿐인 인생의 주체가 되고 싶은 꿈은 누구나 있다. 내 인생의 최고가 되었다는 인생의 주체가 됨을 노래방에 만큼은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노래방을 즐겨 찾는다.

그리고 또다른 기류 하나가 가족단위로 노래방을 자주 찾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발표력과 자신감을 키워주는 노래방의 이기를 맛볼 수 있다. 이젠 노래방문화는 농촌문화의 중심 기류로 형성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언할 수 없지만 얼마만큼 노래방의 긍정적인 문화적 측면을 부각시키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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