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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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달
  • 김종례(시인, 수필가)
  • 승인 2019.09.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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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어가는 햇과일마다 가을햇살이 눈부시게 입맞춤하고, 전원의 교향곡에 마음의 휴식을 얻는 구월의 아침이다. 언제 어디를 둘러봐도 침묵하는 신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고, 가을의 노래를 작시하시는 그 분의 시낭송도 들려오는 요즘이다. 지붕위로 기세등등하게 기어오르던 수세미 줄기 끝에서 별처럼 웃고 있던 샛노란 꽃잎은 시들해져 가고, 태양이 지휘하는 방향으로 열정을 뿜어대던 고흐의 해바라기도 고개를 떨구는 요즘이다. 여름 내내 대지의 수액을 길어 올리느라 노곤해진 생명체들이 바람에 제 영혼을 실려 보내려는 조짐이다. 작은 정원에도 감나무 잎새의 공중곡예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제 이름을 불러 달라고 손짓하던 가을꽃들이  왈츠를 추어대는 요즘이다.
 어느덧 한가위가 지난 지도 열흘째로 접어들며 가을이 점점 깊어만 간다. ‘더도 말고 덜도 아닌 한가위만 같아라!’ 한 말은 결코 기후만을 의식한 말은 아닐 것이다. 추석날 초저녁에 산마루 위로 두둥실 떠올랐던 그 달의 환영이 아직도 가슴에 생생하니 말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어지럽고도 세찬 풍파 가득한 세상을 향하여 고요하게 웃어주며, 나 모성의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회복하고 영혼의 휴식을 찾으라고 권유하는 듯하였다. 모든 사람들도 그 보름달을 바라보며 마음의 소원을 빌기도, 노래를 부르기도, 사랑을 하기도 하였으리라~~ 가정의 평안과 건강한 사회, 국가, 세계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 빌었던 모든 이들의 마음도 무르익던 밤이었을 것이다. 달빛이 감나무 꼭대기를 지나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에는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고, 새색시 면사포처럼 신비로운 은빛을 한량없이 쏟아내려 주었다. 어릴 적 달빛 아래서 숨바꼭질하던 친구들의 얼굴도 하나 둘 떠올랐다 사라졌다. 어느덧 내 인생의 산마루에도 가을이 깊어감을 깨달으며, 젊은 시절 읽었던 좋은 글도 생각나던 한가위 밤이었다. ‘(중략)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자신에게 어떤 열매를 맺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하여,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주고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가야 할 것이다.’라고 다짐했었건만... 지나간 여정을 뒤돌아보며 반성의 명상을 가지게 된 한가위 밤이었다. 원래 사람이 신생아로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랑이 충만한 뇌파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런저런 환경과 인과관계 속에서 그 사랑이 빛을 잃거나 방황하기도 하였지만, 다시 소망의 불쏘시개를 만나면 언제라도 사랑의 온기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새 생명 아가처럼 둥근 마음이 되어 네 주변을 사랑하라고, 흠집나고 오염된 마음의 그릇을 윤이 나게 닦으라고, 오염된 네 영혼을 정결하게 씻어 눈처럼 희어지라고, 구월의 달은 그리도 휘영청 밝게 비추었나 보다. 모든 이들의 염원과 간절함이 모여서 한가위 그 밤에 보름달로 떠올랐나 보다. 또한 보름달은 우리에게 넌즈시 위로의 말도 건네주지 않았나 싶다. ‘삶이 힘들다고 너무 실망할 일만은 아니라고~~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기에~~ 모든 힘든 순간들은 구름처럼 바람처럼 또 나 보름달처럼 금방 지나가 버리기 마련이라고~~ 꽃이 피면 지는 날이 오는 것처럼, 잎이 돋으면 낙엽 지는 날이 오는 것처럼 ~~ 세파의 온갖 침식작용으로 둥글게 깎여가며 밝고 작은 조약돌로 다시 태어나라고~~ 그리하여 구월의 바람처럼, 하늘의 구름처럼, 둥근 보름달처럼 살아가면 될 것이 아니냐고 ~~’ 빙그레 웃으며 가르치고는 서산으로 사라졌다.
 우리의 가슴마다 소망의 달을 품었던 구월은 내면의 깨달음으로 지혜의 두뇌를 회복시키고, 사랑의 가슴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위로해 주며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우리 모두 구월의 달을 가슴에 품어서 진정한 휴식의 징검다리로 삼는다면, 일년내내 마음의 등불을 밝혀 세상을 정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깨달음이 오곡백과처럼 익어감으로써 오색찬란하고 아름다운 가을빛이 물들어 가기를, 우리의 아껴둔 예쁜 추억도 가을꽃처럼 곱게 접어두는 구월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밀려오는 그리움이 노을빛으로 물이 드는 찬란한 가을의 해거름에 흘러간 구월의 노래를 읊조려 본다. ‘꽃잎이 피는 소리 사랑이 오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에 내 사랑도 떠나가고, 사랑이 가는 소리에 낙엽은 다시 떨어지네. (중략) 구월이 가기 전에 그 누구라도 만나고만 싶어라~~’ 전설처럼 피워내는 가을 꽃 한 송이에도 산들바람이 안겨오니, 마음의 달을 품은 우리 모두 사랑하기 딱 좋은 구월이기 때문이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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