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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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 김종례 (시인.수필가)
  • 승인 2019.07.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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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두 그루 있다. 내가 시집오던 날 대문 안에 첫발을 들여놨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감나무이다. 아들을 낳아 안고 들어올 때도, 딸을 낳아 안고 들어올 때도 온 몸에 백설을 입고 축하해 주었고, 40여년 직장생활 동안 아침저녁으로 손을 흔들어주던 감나무이다. 훗날에 내가 누워서 이 집을 떠날 때도 역시 감꽃 흐드러지게 휘날리며 배웅해 주리라! 어느덧 세상에 둘도 없는 동무처럼 친근해졌으니 말이다. 감꽃이 진 자리에 돋아난 잎새들이 찬란한 햇살을 포옹하면, 그림자의 영역이 견고해지며 그늘 텐트막이 제공되는 요즘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 대접하기도 안성맞춤인지라, 소통의 아지트 노릇까지 해 주는 보배로운 터전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자그마한 정원카페 현판까지 내걸게 되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드는 곳도 바로 이 감나무 그늘이다. 생명전자 태양을 만나 광합성 작용이 최대치에 이르면서,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분명해지는 녹음지제이기 때문이다. 빛이 찬란하고 강한 날일수록 덩달아 그림자도 진하고 어둡게 드리워짐을 알 수 있다. 빛과 그림자 양면의 조화로움 속에서 무아의 기쁨을 만끽해 보는 요즘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감나무 그늘막 아래서 생각의 가지치기를 반복하며 글도 쓰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의 내면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다를까?’이다
 태초부터 창조주는 인간을 밝은 생명력의 빛 속에 머무르게 하며, 뜨거워진 몸과 충만해진 정신으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게 하였다. 그러나 초정보, 초과학 초스피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물질 만능 글로벌 시대가 되자, 어둠속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밝은 빛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쉽사리 어둠을 택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가며, 상상을 초월한 각종 흉악범죄들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에고가 사라지고 주객이 도치되고 적반하장이 기세를 부리는 해괴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밤에도 대낮처럼 찬란하게 비추는 광선의 남용으로 많은 생물들은 생육의 기능을 잃어버리거나 병들어 죽거나 변종학적 생태계를 조성하게 되었다. 밤낮의 역할이 뒤바뀌어 제 본분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인간과 지구가 병들어 감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지구와 인간의 본성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거나 도치해서는 아니 될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빛과 그림자의 본분과 역할이 와전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적절한 조화로움 속에서만이 인간의 행복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비가 내린 후에 태양이 비쳐야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조선시대 이기(1522~1600)가 쓴 필기잡록에 적힌 한 귀절이다.‘사람을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형상을 살피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림자를 잘 살펴야 된다. 겉모습에만 힘을 쏟는 것은 형상이고, 참된 판단력이나 사고력에서 드러나는 것이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내면의 그림자가 그러하다면 형상은 굳이 볼 것도 없기 때문이다.’성경에도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지니라. 서로 어둠을 권면하지 말고 도리어 견제하고 책망하라. 책망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빛으로 나타낼지니… 빛의 열매는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통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둠속 그늘에서만 사는 생물들은 밝은 세상의 실체와 정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고 한다. 역시 어둠에 묻힌 인간도 생명의 빛을 멀리 한다면, 더 좋은 희락과 질서와 화평의 세상을 느끼지 못한다. 어두운 내면에 밝은 빛이 환히 비치면 자신의 어두운 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밝은 자연 광선을 멀리하고 도로 어둠을 택한다는 해설도 있다. 우리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어둠을 멀리하고 빛 가운데로 나가는 소망의 다리를 건너야 할 것이다. 빛의 자녀들답게 믿음, 정직, 절제, 정결한 인성을 소유하여 내일의 무지개를 띄워야 할 것이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 빛 가운데 서면 간절히 원했던 참 자아로 충만한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시점이라 할지라도 다시 희망의 빛을 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두운 일제강점기를 통과하고 독립국가를 선언했던 우리 역사처럼 말이다. 나는 오늘도 길게 드러누운 감나무 그림자 아래서 쓴 커피 한잔을 다스리며, 흘러간 노래 ‘빛과 그림자’를 흥얼거려 본다. 새삼스럽게도 ‘내 안의 그림자는 무엇일까?’도 고민해 보며, 점점 원초적인 모습을 잃어가는 자아를 살피고자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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