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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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귀촌
  • 석보 김태혁
  • 승인 2019.07.0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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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보 김태혁

어린 나이에 상경해  50여년을 타향객지 서울에서 살아오다 정년퇴직한지 1년여...
창살 없는 고층아파트에서 감옥같은 생활을 해야 했던 그 세월은 생황에 회의를 느끼며 삶의 의미마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삶의 행로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속됐고 쇠뿔도 단김에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귀촌의 의지가 솟아올랐다.
“그래, 귀촌이다”는 결심을 했다.
그날 저녁, 사랑하는 아내와 다정한 대화를 나눴다. 당신을 한평생 고생시켰으니 이제 조용한 숲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세월 알콩달콩 살아가자고...
아내는 허락했고, 우리는 손잡고 갈 곳을 찾아 나섰다.
찾은 곳이 보은군 수한면 거현2리다. 금적산 줄기가 뻗어 내린 문티재 아래 형성된 이 마을은 아름답고 주민들의 정감이 훈훈하게 넘쳐났다. ‘여기다’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봇짐을 쌌다. 6년 전인 2013년 10월, 70여년에 가까운 희로애락의 봇짐을 풀어 놓을 수 있었다. 감개가 무량했다.
이사한 집에 봇짐을 풀어놓고 마을회관을 찾아 정성껏 마련한 다과와 식사를 접대하니 마을 분들이  팔을 벌려 환영했다. 너무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이 마을에 나와 나이가 같은 황금돼지에 해에 태어난 정해생이 셋이나 있었다.
금방 친해지고 친구가 되어 “너” “나” “자네” “친구”라 내키는 대로 불러대도 정은 넘쳐났다.
부인들에게는 무조건 “제수씨”라고해도 누구하나 불편함 없이 대함에 정감이 넘쳐났다.
이사를 하고보니 이웃들이 “와줘서 고맙다”며 집에서 아끼고 아끼던 것들을 가져와 음식이 넘쳐났다. 정감도 넘쳐났다. 도시에서 보도 듣도못한 음식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 지쳐왔던 도심에서의 생활과는 열 번 백번 달랐다. 새벽이 되면 햇살 밝은 둘레길을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이 넘쳐났다.
한낮이 되면 텃밭에 꿈을 가득 담아 가꾼 상추와 채소들을 청정수 맑은 물에 흔들어 씻어 보은 쌀 좋은 밥에 상추쌈을 먹노라면 “참 잘했다. 시골이 최고지만 보은이 최고”임을 날마다 느낀다.
해마다 겨울이면 금불을 때며 온기와 정감을 느낀다. 아내와 나는 행복의 단잠을 이룬다.
그 때문인지 눈을 뜨면 늘 가가 중천에 떠있었다. 집을 나서면 보은군노인장애인복지관이 즐거움을 선사한다.
컴퓨터, 서예, 문예, 스포츠댄스 등을 배울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
이런 즐거움에 어느덧 12장 달력 5부가 떨어져 나갔다. 얼마 전에는 돼지띠들이 합동 고희잔치를 하자며 매달 모아둔 돈으로 합동 고희연(칠순잔치)도 즐겼다. “인생은 70부터...”라고 자식들이 걸어준 현수막아래서 춤추고 노래하고 뷔페음식을 맛보며 행복에 넘쳐났다.
4쌍 8명의 우리는 존중과 사랑으로 남은인생을 살라갈 것이다. 이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보은이 좋다. 그래서 정말 이웃들과 정겹게 지내며 아름다운 보은에서 아내와 손잡고 결초보은(결초보은)하며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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